🍏 2월호《풋》: 풋

1편째 풋소설

2024. 2. 6.

🍏 2월호《풋》: 풋

1회 (2024.02.07)

2월호 주제 《풋》

천둥 치는 소리를 들려줘

우정

여름이 되면 박하를 찾았다. 박하는 더운 걸 무척 싫어해서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면 뭐라도 떨어지고는 했다. 그 애가 매일 들고 다니는 양산이나 선풍기를 빌려 쓰거나, 가끔씩 허락되는 얼음물 한 입을 마시고 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루는 박하가 그렇게 더우면 네 걸 가져오면 되지 않냐며 타박했고, 나는 그제야 그렇게 쉬운 걸 왜 이제서야 알았지, 싶었다.

어김없이 박하를 찾은 여름, 나는 물었다.
“내가 널 좋아하는 걸까?”
박하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럼 너는?”
박하는 그것도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독한 말괄량이였고 박하는 전교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었다. 애들은 박하가 얼마 못 가 나를 찰 거라며 빈정거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은 모르잖아,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우리는 함께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비슷한 게 많았다. 말투 같은 것은 물들어 어쩔 수 없다 쳐도 취향과 가치관, 심지어 장래희망까지 같았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고드름’ 아이스크림. 그것만큼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애들 말대로 박하와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우리의 닮은 점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공원 정자에 나란히 앉아 뭉그적대던 밤이었다. 박하가 고드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더니 요란하게 씹어 먹기 시작했다.
“혀로 녹여 먹어야 오래 시원하지 않아?”
“얼얼해서 싫어.”
그런가? 나는 순간 약간의 얼얼함을 느끼며 혀 위에 있던 얼음을 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박하를 빤히 바라봤다.
“잠시만.“
박하가 마지막으로 남은 얼음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는 내 귀를 자기 옆통수에 가져다 댔다. 와자작- 와자작- 씹을 때마다 박하의 머리를 타고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천둥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녹아 작아져 버린 얼음을 박하처럼 씹었다.

그날 이후로 틈만 나면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졸랐다. 배탈 난다며 말리는 박하를 겨우 설득한 날이면 포장지를 까기도 전부터 내 몸이 박하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박하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증거를 수집하듯 공통점을 찾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하면 저절로 살결을 맞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데 박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느 하굣길, 나는 슬며시 박하에게 팔짱을 꼈다.
뒤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박하네 반 애들인 것 같았다.
박하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끈적거려.”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역시 그러려나. 땀이 살짝 마른 후라 그런지 꽤 끈적거리긴 했다. 나는 박하를 따라 뒤늦게 얼굴을 구겼다.
끈적한 건 싫었다. 박하가 싫다면 나도 싫었다. 나는 혼자만의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규칙은 박하와 한 뼘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승자는 언제나 박하였다. 바람이 연하게 불어올 때면 내 몸이 끌리듯 박하에게로 갔다. 내겐 너무 불리한 게임이었다. 나는 지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끈적한 건 정말이지 질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