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도 글 쓰나?

 어느 한산한 겨울 오후, 카페에 앉은 재희는 아까부터 창가 좌석의 여자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소지품들 하나하나가 자꾸만 눈에 걸렸다. 오래 사용한 듯 반질반질한 자판은 햇빛을 부드럽게 반사했고, 커다란 머그잔과 가지런하게 깎인 연필, 구겨지고 때가 탔지만 이내 멋스러운 에코백이 테이블 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옆에 펼쳐진 양장 노트는 손 글씨와 스케치로 가득했다. “저대로 작가 코스프레 키트로 팔아도 되겠어.” 재희는 그가 너무도 근사하다는 생각을 떨치려 맥없이 중얼거렸다.

 작업 중인 소설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떤 말이라도 쓸 수 있다는 건 아무 말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재희가 냅킨 석 장을 갈가리 조각내고, 그걸로도 모자라 젖은 종이 빨대까지 한참을 괴롭혀 테이블이 난장판이 되었을 때쯤, 창가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소지품을 저렇게 늘어놓고, 노트북도 열어놓고, 공책도 펼쳐놓고 자리를 비우다니. 진짜 무방비하다. 글도 무방비할까? 무방비한 글은 어떤 글이지? 막 되게 두려움이 없나? 재희의 시선이 창가에 홀로 놓인 노트북과 공책에 우뚝 멈춰 섰다.

 재희는 충동에 이끌려 순식간에 창가 자리에 다다랐다. 두려움이 없는 건 오히려 본인 쪽이었다. 펼쳐진 노트의 글씨는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어떤 시의 필사 같았는데, **“사람들 틈에 끼인, 살아본 적 없는 생을 걷어내고 싶었다. … *죽이 끓든 밥이 끓든 나는 변하지 못했고 또 목요일. 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라는 구절만 알아볼 수 있었다. 재희는 해독을 포기하고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쯤 어두워진 화면 앞에 재희는 갈등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스페이스바 한번 눌러봐? 근데 이거 미친 짓 아니야? 들키면 어쩌려고.

 그때,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순간 재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곧 울먹이는 표정이 되어갔다. 재희는 머릿속이 하얘져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고, 그 바람에 테이블에서 미처 떼지 못한 손에 연필이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그르르 연필 구르는 소리 위에 재희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그 길로 도망을 쳤다. 여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했으나, 자꾸 미안하다며 말을 자르는 재희 때문에 입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뒤통수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재희가 노트북을 가방에 넣지도 못하고 끌어안은 채 카페 현관을 나섰을 땐 한산한 오후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요란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직 2월인데, 차라리 눈이 더 어울리지 않나. 재희는 체념한 듯 코트를 벗어 노트북과 책이 들어 있는 배낭을 덮었다.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재희는 뼈가 아린 한기에 이대로 콱 숨이 끊어져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척비척 침실에 들어가자, 바닥과 침대가 엉망이었다. 창가에 둔 화분이 열어둔 창문 틈새로 들이친 비와 바람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사방에 흩어진 흙과 깨진 화분 조각을 쓸어 담으며 재희는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대체 집이 뭐길래 내 방에서 내 옷을 입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아마 평생 그 집이 어딘지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을 거다. 결국은 허무에 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그런 호기심은 못 본 척하고 살겠지. 순도 100%의 오기, 꾸역꾸역 먹고 웃고 사랑하고 배우며 살겠다는 집념으로. 아까 거리에 우산이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뭐야? 뭐 그렇게 다들 삶을 다루는 데 능수능란해? 나만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재희는 깨진 화분 조각들을 신문지에 싸서 현관 옆에 두고, 성한 화분 몇 개는 다시 창가에 올려둔 뒤 거실로 나와 쇼파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비에 젖은 머리가 뺨을 건드릴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슬며시 열린 우울로 향하는 문이, 그 틈에 비어져 나오는 깜깜한 빛이 두려웠다.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웅크리고 누워 오들오들 떨다가, 무표정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몸을 일으켜 냉동 딸기를 넣은 요거트를 먹다가, 다시 담요를 비집고 들어가 엉엉 울었다. 아직 딱딱한 딸기를 억지로 씹으니 이가 너무 시렸고, 몸에서는 말라비틀어진 비 냄새가 났다.

 지나온 길은 기억이 나지 않고,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해 온 것 같은데, 왜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일까. 재희는 자신이 영원히 계속되는 미완성의 상태에 갇혔다고 느꼈다. 도달하지 못한, 정착하지 못한, 잠시 마음을 두었다가도 곧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마는, 문장을 맺지 못하고 자꾸만 반점으로 이어가게 되는, 엉망으로 무너진 말만 내뱉고 그것을 글이라 우기는, 이런 날들에.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투명하게 비치기 마련이라는데, 재희는 자기 글을 보면 한없이 괴로워졌다.

 꿈이 진짜 피를 말리는구나, 바싹바싹 타들어서 이러다 죽겠다 정말.

 재희는 카페에서 훔쳐본 노트의 글귀를 떠올렸다. 그 근사했던 사람, 그 사람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바보 같았겠지. 굳이 따라 나와서 우산은 왜 빌려주겠다고 해 사람 쪽팔리게. 정말 싫다. 너무너무 싫다. 재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입술을 씹다가 손톱을 뜯다가 다리를 떨었다. 온몸이 덜덜 흔들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훌쩍거리던 재희는 휴지를 집어 코를 팽 풀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아직 코트에 싸여있던 가방을 꺼냈다. 그러고는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의 화자는 40대 여자 소설가,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쓰여갔다.

 “진 빠지는 하루였다. 새로 시작한 소설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고, 라테의 우유를 두유로 바꾸는 걸 깜빡해 하루 종일 속이 부글거렸으며, 카페에서는 누군가 내 공책을 훔쳐보고 노트북도 건드리려고 했다. 그 맹랑한 여자애는 내가 말 한마디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도망쳤는데, 곧장 카페 현관에서 발이 묶였다. 2월에 이례적인 폭우가 내린다고 뉴스에서 일주일을 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 손엔 우산이 없었다. 꼭 끌어안은 노트북, 추위와 당혹감에 빨개진 얼굴, 무겁게 쳐진 백팩과 갈피를 잡지 못한 눈빛, 전형적인 풋내기의 행색이었다. 호의로 우산을 건넸지만, 그 애는 거절했다. 얼마쯤 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땐 그 애가 가방을 코트로 감싼 채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친 진짜 개추워!”라고 비명을 꺅 지르며 달려가는 모습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겁먹은 표정에서 곧장 생기 있는 목소리로, 참 쌩쌩하구나.

 나는 발걸음을 돌려 그 애를 따라갔다. 그 애는 지친 몸을 이끌고서는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정리하고, 몸을 덥히고, 요거트를 먹었다. 그대로 누워 조금 놀다가 울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아 글을 썼다. 그 애가 엿보이는 창문 위로는 계속 빗줄기가 흘렀다. 빗방울이 땅 위로 툭툭 부딪히며 풍기는 풋내가 싱그러웠고, 이내 그 향이 물웅덩이 수면 위로 떠올라 빗물 속을 유영하는 듯했다. 올해는 조금 빨리 봄이 오려나 싶었다. 흩어지는 입김 너머 그 애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 참 슬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