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십이는 물품보관함에서 태어났다. 실험상 한 개체였어야 할 우리는 돌연변이가 일어나 십일과 십이로 나뉘어졌다. 태어나자마자 떨어져 자랐기 때문에 나는 십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십일, 십이라는 이름 덕분에 십이가 내 옆 방에 있다는 사실만 알았다. 방끼리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아 나는 십이가 어떤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제대로 본 적도 없어 십이가 궁금하지 않은 나에게 K는 종종 십이에 대해 말해주었다. K가 말하기론, 나와 십이는 손을 꼭 잡은 상태로 태어났다고 한다. 아, K는 일주일에 한 번씩 건강을 확인하러 오는 친구였다. K는 문에 머리가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작은 얼굴에 처진 눈을 가졌다. K의 얼굴을 만지면 시원했고 부스스한 머리는 폭신했다. K의 옷은 변함이 없었다. 희고 검은 옷들. K는 색을 모르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

 나는 K를 좋아했다. 무표정으로 필요한 말만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K는 다정했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K는 내게 올 때마다 빠짐없이 주사기를 챙겨 왔다. 어느 때는 주사기가 2개였다면, 어느 때는 가방이 가득 차게 주사기를 들고 왔다. K가 안녕, 이라고 손을 흔들고 인사하면 나는 K에게 달려가 안겼고 약속이라도 한 듯 K는 내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었다. 삐죽 튀어나온 머리를 한 채 나는 침대에 누워 채혈을 하고 주사를 맞았다.

 나는 혈관이 약해서 주사를 맞다 보면 혈관이 터지고 피멍이 드는 날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K는 주사를 놓고 나는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다 맞으면 K는 항상 다른 애들 몰래 주는 거라며, 자그마한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K와의 비밀이 좋았고 달콤한 사탕이 주는 우월감을 즐겼다.

*

 혈관이 다 터진 팔에 주사를 놓다가 팔이 다 붉게 변한 날이었다. 팔에 감각이 없었다. K는 검붉은 팔을 보고 당황했는지, 지혈제를 더 가져오겠다며 급하게 나갔다. K가 나가자마자 문이 끼익- 소리를 냈다. 덤벙거리는 K가 또 뭔갈 두고 갔나, 싶어 문 쪽으로 다가갔다. 고동색의 얇은 머리카락, 호박색 눈, 창백한 피부.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가 어른의 손을 잡고 문밖에서 지나갔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보다 키가 작고 어렸다. 나는 보자마자 이 애가 십이라는 걸 알았다. 나중에 십이에게 듣기론, 십이는 그전부터 나를 몰래 봐왔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나는 멍하니 십이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십이의 볼이 튀어나와 있었다. 사탕이었다. K가 나에게만 준다고 했던 사탕이었다. 십이가 사탕을 물고 있는 걸 보자마자 나는 뛰쳐나가 십이의 가슴을 치고 사탕을 뱉으라고 소리쳤다. 십이는 내 팔을 보더니 사탕 따위 어딨냐는 표정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K에게 듣기론 십이는 얌전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K는 거짓말을 했거나 십이에게 속았던 것 같다. 십이는 가슴팍에 놓인 내 팔을 힐끗 보더니 내 손을 툭 쳤다. 십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K를 빼앗겨서 속상한 건 나고 놀림받은 것도 난데, 십이가 오히려 더 언짢아 보여서 어이가 없었다. 십이는 내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어른의 손에 이끌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K는 지혈제를 들고 뛰어왔다.

 그날 이후로 K가 오는 날이 줄었다. 1주일 주기로 오던 K는 2주에 한 번 올까말까였다. 찾아오는 횟수와 관계없이 K는 늘 다정했기에 감히 내가 싫어졌냐고 물을 수 없었다. 말을 빙빙 돌리다 쭈뼛거리며 요즘 바쁘냐고 물어보았다. K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가 덜 와서 삐쳤어?”하며 허리를 간지럽혔다. 간지러워서 웃는데 갑자기 속이 뜨겁고 목이 답답했다. K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간지럽히기를 멈췄다. 나는 목을 잡고 숨을 들이쉬었다. 무언가 속에서 자꾸 올라왔다. 참을 수가 없어서 콜록거렸다. 바닥에 피가 쏟아졌다. ‘어라.’ 그대로 나는 몇 번 더 콜록거리다가 눈앞이 어지러워서 어떻게든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몸에 힘을 뺐다. K의 표정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K는 계속 내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그렇지만 K는 내 몸에 손대지 않았다. “잘자.” K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던 기억에 비해 잘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했다. 손이 묵직한 느낌이라 옆을 보니 나와 똑같은 아이가 내 손을 잡은 상태로 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됐다. 나와 십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나와 똑같이 생긴 십이는 왜 내 방에서 내 손을 잡고 내 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있는 건지 어느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일단 십이에게서 손을 슥 빼냈다. 뭔가 이상했다. 손 위에 놓인 십이의 체온이 좀 차갑다고 느끼긴 했는데, 손을 빼자 자연스럽게 펴지지 않고 손을 잡은 모양 그대로 뻣뻣하게 있었다. 설마. 십이를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자 십이를 흔들었다. 십이는 뻣뻣하게 굳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십이의 옷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팔다리가 다 깊게 파여 있었다. 헉, 소리가 났다. 숨이 빨라졌다. 그대로 다리를 세우고 침대 위를 주춤거리며 가다가 벽이 등에 닿았다. 베개 옆을 보니 권총 하나가 있었다. ‘총……?’ 그러고 보니 화약 냄새가 살짝 나는 듯했다. 용기를 내서 침대를 내려갔다. 뻣뻣해진 십이를 만지기 겁났지만, 쌍둥이를 저렇게 둘 순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십이를 들어 침대에 올려놨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K는 괜찮은지 보기 위해서 숨을 고르고 혼자서 열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처음 맡아본 피비린내에 속이 메스꺼웠다. 팔로 코를 막고 발을 뗐다. 떼자마자 기절할 뻔했다. 사람들이 줄지어 죽어있었다. 피가 복도를 메웠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시체를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른들은 물론, 다른 아이들까지 모조리 다 죽어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서워서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실눈을 뜨고 중앙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이 총을 손에 쥐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K였다. “K, K, K.” 나는 다급하게 달려갔다. “K, 정신 차려, K.” K의 고개를 들어 무릎에 놓았다. 눈물이 K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K, 왜 인사 안해줘? K.” 왜 나를 제외하고 다 죽었을까? K의 어깨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물품보관함 두 개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애초에 쓰고 버리기 위해 태어났는데, 죽는 건 일조차 되지 않았다. 죽어나가는 아이들은 하루에 수십 명이었다. 나도 알았다. 모르지 않았다. 나는 십이의 실험군이라서 온갖 주사를 맞아야 했다는 걸, K는 이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으로 온갖 아이들의 실험에 참여하고 방관했다는 걸, K의 주사 때문에 내 몸의 면역체계가 너덜너덜해져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십이가 밉지 않았고 이 삭막한 곳에서 유일하게 다정한 K가 좋았다. K를 곧게 눕히고 K의 이름이 적힌 방을 찾아 들어갔다. 수석연구원의 방에는 맡은 실험에 대한 내용이 보관되어 있었다. ‘CASE 1011호’ 내 파일을 찾아 꺼냈다. 공간의 깊이감이 달라 파일 보관함을 자세히 보니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이중 파일이었다. 그 파일에는 나와 십이에 대한 애정이 적혀있었다. K는 실험체와 관계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와 십이를 처음부터 자신이 맡으면서 정이 들어버렸다. 파일에는 K가 나와 십이를 빼내려는 계획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내가 피를 토한 건 계획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K는 나와 십이를 빼내기 위해 관련된 연구원들과 실험체를 다 죽일 계획이었다. 상황을 보니 실제로 그런 듯했다. K가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총을 맞은 부위는 밑에서 위로 길게 나 있었다. 나보다 키가 작은 아이였다. 나는 발을 끌면서 십이의 방으로 갔다. 십이의 방문을 열자 상자가 발에 챘다. 상자를 열자 상자가 사탕으로 꽉 차 있었다. 내가 매번 K에게 받은 사탕이었다. 동시에 K가 십이에게도 먹여준 사탕이었다. “십이….” 그때 십이가 낮게 말한 말은 “미안해.”였다. “하하.”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십이의 옆에 누워 십이의 손을 잡았다. 나머지 한 손을 총을 쥐었다.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