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진다. 잠에서 깨고 한동안은 창문 앞에 앉아 볕을 쬔다. 선명한 빛이 만져질 것도 같아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존재하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과 만질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작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규모는 작아도 늘 손님들로 북적여서 꽤나 바쁘다.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책임과 떠들썩한 소음이 썩 마음에 든다. 일하는 동안만큼은 시간이 흐른다.

 산책은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두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근사해서 종일 걸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마을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귀여운 꼬마들은 주말마다 몰려와 집 문을 두드린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안기는 아이들의 볼이 보드랍다. 쿠키와 우유를 내어주면 매번 좋아하고, 나는 그 얼굴들이 매번 좋다. 부스러기들을 치우고 카펫 위에 앉자 내 무릎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든다.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예뻐서 잠깐 바라보다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는 한다.

 아주 깊어 빛도 잘 닿지 않는 바닷속에도 누군가 살고 있을까? 믿기 힘들겠지만 인어들이 살고 있어. 어둑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었어. 그러나 인어들은 환하고 밝은 것들, 빛나는 것들을 유독 사랑했단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어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체들을 쫓아다니거나 수면으로 나가 햇살을 쬐고는 했어. 대다수의 인어들이 빛을 찾아 헤매거나 바다 곳곳을 탐험하고, 인간 세상을 기웃거릴 때 꼼짝도 하지 않는 인어도 있었어. 안나, 그 앤 꼬리가 없는 인어였어. 너희도 물고기를 그릴 때 항상 꼬리를 그리지? 물속에 사는 생물들에게 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 그런데 안나는 태어날 때부터 꼬리가 없었단다. 물론 헤엄을 아예 못 치는 건 아니었어. 안나에게는 두 팔이 있었거든. 시간이 걸리긴 해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지. 하지만 또래 아이들이 헤엄치며 놀 때 안나는 우두커니 멈춰 있었어. 친구들과 헤엄을 치다 보면 안나는 자연스레 뒤처졌고, 언제나 친구들의 꼬리가 보였거든. 그럼 자신의 뭉툭하고 밋밋한 꽁지가 떠올랐어. 누군가 그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워서 으슥한 곳으로만 다니곤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우연히 소문으로만 듣던 마녀의 은신처를 발견했어. 안나는 마녀에게 부탁했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야.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도, 인간 세상이 궁금해서도 아니었어. 그저 그들이 안나처럼 꼬리가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었어. 마녀는 유심히 그녀를 들여다보더니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의 소원은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어. 마녀의 말이 맞았어. 안나는 꼬리만 없는 것이 아니었어. 뛰어난 재주나 예쁜 목소리도 없었고, 비싼 재물이나 간절히 바라는 꿈조차 없었거든. 마녀는 절망하는 안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며 때를 기다리라고 말했어. 하지만 안나는 헛된 희망 따위를 품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그녀는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단다. 자신을 다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말이야. 그곳은 내내 밤이었어. 그 앤 하루 종일 별도 뜨지 않는 까만 밤하늘에 둘러싸여 있었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그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두려움과 허무함, 수치심 중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지. 하지만 기쁨도 슬픔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어. 내가 말했지, 인어들은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안나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안나는 생각했어.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같기도 했어.

 그때였어. 안나의 눈앞에 희미한 형체가 보였어. 그건 거대한 꼬리였어. 정지해 있던 안나의 눈동자가 꼬리를 따라 서서히 움직였어. 안나가 꼬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어. 안나는 의문의 꼬리를 따라갔어. 하지만 금방 놓쳐버리고 말았지. 그녀는 날마다 꼬리를 따라 헤엄쳤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아른거리는 꼬리를 따르다 보면 그 꼬리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안나의 수영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어.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지. 마침내 안나는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제야 꼬리의 주인과 눈을 맞출 수 있었어. 그는 자신을 말루스라고 소개했어. 바다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어. 안나가 처음 마주하는 햇살이었어. 말루스는 아주 큰 숨을 내쉬었고 그러자 등에서 거대한 분수처럼 물이 치솟았어. 무지개 아래에서 안나는 잊어버린 줄 알았던 미소를 지었단다. 그 뒤로는 안나가 수면 위로 나오는 날이 잦아졌어. 말루스는 늘 안나와 나란히 헤엄쳤고 자신의 등 뒤에 그녀를 태우기도 했어. 헤엄이 그리 재밌는 것인 줄은 몰랐어. 그렇게 도착한 바다의 바깥 면에서 안나는 육지를 걸어 다니는 인간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는 했어. 그들은 자신과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지.

 -나는 꼬리가 없어. 그러니 인어가 아니지. 그치만 인간들과 같은 다리도 없어. 그러니 인간도 아니고. 나는 뭘까?

 그러자 말루스가 서툰 발음으로 소리를 냈어. 고래의 언어와 인어의 언어는 같지 않았거든.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

 -안나.

 -맞아. 제법 늘었는걸. 내 이름은 안나지. 그건 나도 알아.

 -안나.

 -그래, 안나….

 그때 안나는 자신의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느꼈어. 있지도 않은 꼬리가 살랑인다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단다. 마음속에 무언가 생겨난 듯한 기분이었어. 햇살이 비치는 곳에 날마다 가고 싶었고, 바다의 생물들을 보는 것이 즐거워졌어. 인어들과 헤엄치며 그들의 꼬리를 진심으로 칭찬하기도 했어. 물론 말루스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숨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았어. 어디든 헤엄쳐 갈 수 있는 자신의 두 팔과 귀여운 꽁지가 마음에 들었지.

 안나와 말루스가 평소처럼 수면 위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이었어.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기 시작했어. 안나는 허우적대며 소리를 질렀어. 꼬리가 없는 안나는 균형을 잡는 것에 서툴렀거든. 안나는 순간 당황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평생 살아온 바다에서 빠져 죽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 말루스는 있는 힘껏 안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지만 파도는 더 빠르게 안나를 밀어냈어. 안나의 눈이 감겨왔어. 눈을 뜨자 까슬거리는 모래알들이 발바닥에 닿았어. 그녀의 하반신을 뒤덮은 비늘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매끈한 두 다리가 생겨나 있었어. 마녀가 약속을 지킨 거야. 무엇을 대가로 가져갔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지. 안나가 인간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다리로 달리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대신 안나는 팔을 이용해 바다로 기어갔어. 다리 같은 건 필요 없었어. 꼬리도 필요 없었지. 다시 그 애와 헤엄을 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안나는 계속해서 파도에 밀려났어. 고래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부를 수 없었어. 그의 이름을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몰랐거든.

 일층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 아이가 묻는다. 그래서 그 인어는 어떻게 되었어요? 다음에 알려 줄게.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옷가지를 입힌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으로….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다. 내내 그랬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밤에도 햇살이 내렸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더는 헤엄치지 못한다. 너를 생각하는 버릇만 남았다. 위로, 위로 올라가면 네가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팔을 휘젓는다.

 그녀는 매일 해변가를 서성인다. 그녀는 인어가 아니다. 인간이 되었으나 실은 인어와 인간 사이 어딘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에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꼬리를 그리워할 뿐이다. 너의 아름다운, 하며 말을 끝맺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