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사랑하는 이들의 눈썹을 쓰다듬곤 했다. 주로 늦은 밤에, 더러 취했을 때 그랬다. 미간 안쪽에서부터 눈썹꼬리를 향해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면 그들은 영문을 모르겠단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멋쩍은 듯 고개를 돌리기도, 손길을 따라 꼬집혀 있던 근육의 긴장을 풀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는 눈은 없었다. 톡 건드리면 웃음이 솟아날 듯 맑은 눈망울도, 오랜 세월 모래밭에 구른 듯 탁하고 텁텁한 눈초리도 모두 동요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그들의 어린 시절과 노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날 가로등 빛 아래 그의 눈도 그랬다.

 우린 그런 얘길 잘도 나눴다. ‘어릴 때 나는 어땠다’는 식의 대화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식의 대화. 두 이야기는 언제나 서로 잘 이어지지 못했고 다른 저녁이나 다른 공간, 다른 마음에 묻혔다. 마음이 상해 물러지거나 취해야만 그제야 느리게 고백할 수 있는 말과 한낮의 해 아래 빌딩 틈바구니에서 분주하게 다투는 말은 서로 퍽 멀었다.

 우리 몸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긴장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멀리 왔다고 생각한들 우린 번번이 손쓸 새도 없이 각자의 그날로 회귀했다. 아주 긴 목줄에 묶인 짐승에 다르지 않았다. 침묵 앞에서, 고함 앞에서 움츠러들었던 아이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과거가 아득히 멀어져 가는 동안 다른 한편의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내달렸다. 분초를 따지며 나아가야 할 길을 가늠하고 시도했다. 양극단의 공간 안에 갇힌 나와 내가 아무리 매 순간 서로를 헐뜯고 밀어내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존재는 무거운 고정축과 그 반대 편의 힘 센 위선자 덕에 날마다 얇고 팽팽해져 갔다. 그 위에는 위태로움이 흥건했고 그건 이따금 눈썹결 아래에 비치다가 미간을 찡그릴 때마다 새어 나왔다. 거울을 볼 때면 흠이 다른 이들의 눈에도 보일까 긴장했다. 나의 공포와 외로움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약점을 들켜선 안 된다는 마음 사이를 갈팡질팡했다. 사랑하는 이들에 가까이 설 때면 꿈꾸던 애정과 가능한 절망을 동시에 떠올리며 그 간극에 벌벌 떨었다.

 흔들리는 그의 눈을 보며, 그도 나와 같으리라 감히 넘겨짚었다. 조심조심 작게 숨을 내쉬는 그를 들으며, 우리가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을 선명히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현재에 의미를 부여할수록 나는 슬퍼지기만 했다. 과거와 미래는 점점 멀어지고, 체력은 꾸준히 줄어갈 테니까. 오늘을 이끄는 의무와 책임은 계속 자라고, 우린 갈수록 좁아질 거니까. 좁아지고 좁아지다 서로에게 닿지 못할 만큼 작아져 버릴 거다. 예정된 이별이 매일 가까워온다. 나빠질 일밖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매번 이별을 떠올렸다. 우리가 서로를 감쌀 만큼 확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넓어지다 못해 풀어지고 흩어져서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도무지 그렇게는 할 수가 없어서 애꿎은 이름만 되뇌었다. 지금 잠시 나와 스친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싶었다. 운명이니 영원이니 하는 말은 꾹 참았다. 내가 계속 존재하고 네가 계속 존재하길 바란다는 마음. 어디에 누구와 있건, 너무 괴롭거나 외롭지 않길 기도한다는 마음만이 진실이었다. ‘우리’에 대해 장담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마음과 상황은 시시각각 변했다. 애정엔 한계도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았다. 각자의 매인 자리에서 휘청이는 마음들이 가끔 하나가 되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는 친구와 이젠 다른 이의 곁에 있는 사람과 내게 때로 잔인한 가족들. 우린 가끔 그들과 행복했던 장면이 덫 같다고 느꼈다. 우린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언제나 덫 안에 조금 더 머물기를 선택했고, 그런 서로를 측은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