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영은 얼마 전 어항에서 기르는 물고기 한 마리를 샀다. 품종은 구피. 키우기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해서 무작정 작은 방 안에 들인 구피와의 동거가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삼 일에 한 번씩 어항 물갈이를 해주는 일도 익숙해져 간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구피의 움직임이 뭐랄까 … 편안하다. 보통은 정말이지 물고기다운 무정형적 움직임을 보이는데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어류 같지 않고 꼭, 사람 같다. 해영은 구피의 비늘이 일정하게 흔들리는 낯선 현상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문득 시계를 확인하고는 급히 반팔 위에 걸칠 체크 셔츠를 챙긴다. 피아노 레슨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출발해야 한다.

  해영은 구피를 집으로 데려온 뒤 얼마 후 6개월 치 피아노 레슨을 한 번에 끊어버렸다. 전혀 해영답지 않다. 물과 생명을 싫어하는 해영이 물에 사는 생명을 한 칸짜리 방에 들인 것도 모자라, 팔자에도 없는 악기 하나를 다뤄보겠다고 충동적으로 거액을 질러버린 행동은. 어쩌면 그런 행동이 해영답지 않은 것이어서. 그리하여 어떤 것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체 어떤 것으로부터, 어떤 수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해영은 의문과 후회가 거듭 찾아올 때마다 습관처럼 낮게 읊조린다. 잘한 걸까. 정말 잘한 걸까. 해영은 잘 해내고 싶다. 너절한 부스러기 같은 인생일지라도 가능한 많은 순간에 환대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거다. 제 모습 제 행동거지 그대로는 너무나 형편없고 뒤틀려 있어서, 응당 미움받거나 무시당하는 그런 거 말고. 그런 잔잔한 욕망은 때때로 터질 듯이 강렬해져서, 해영은 와락 울고 싶어진다.

  성인 피아노 학원은 주로 직장인들이 오는 편이라 저녁 시간대에 사람이 몰린다기에 일부러 낮에 레슨을 잡았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서 선생님과 둘뿐인 조용한 공간이 해영은 조금 어색하다. 게다가, 손목이 흔들리면 안돼요, 건반에 닿는 손가락에만 힘을 주세요, 힘이 들어가야 할 곳과 말아야 할 곳을 상상하며 분리해 보세요, 같은 지나치게 막연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말들엔 적응이 어렵다.

  그중에서도, 해영님은 안 좋은 습관이 많으시네요, 라는 말이 제일 거슬린다. 손목이 자주 흔들리고 손가락에 힘이 없어요. 예전에 피아노 처음 배우실 때 습관을 잘못 들이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예의 바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해영은 얼굴이 벌게지고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게, 제가 원래 힘이 좀 없거든요. 1년 간 만났던 전 애인도 저한테 손잡을 때 힘 좀 주라고, 꼭 억지로 잡는 것 같다고 자주 나무랐어요. 나는 내가 힘을 안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는데. 나는 이미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쁜 습관들이 몸과 마음에 그득하게 찼기 때문에 단 한 개도 고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말들을 쏟아내진 못하고 선생님 앞에서 해영은 그저 손등을 몇 번 꼬집을 뿐이다.

  레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해영은 겉옷도 벗기 전에 어항 앞에 선다. 실은 오늘 오후 내내 레슨을 받으면서도 속으로 구피를 생각했다. 아침에 본 구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을뿐더러 그걸 본 해영의 마음이 뭔가를 게워 내고 싶은 사람처럼 줄곧 울렁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건데,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어항을 살핀 거였는데. 해영은 예상 밖에 운동을 완전히 멈춰버린 구피를 멍하니 응시했다. 자그마한 물살을 열심히 가르던 지느러미가 축 처져 있는 모양새를 보다가 해영은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들어 변기통에 오늘 먹은 것을 토해내고 만다. 조금 진정이 되자 인터넷에 키우던 물고기가 죽었어요, 라고 검색한 뒤 스크롤을 따라 열거된 죽은 물고기 처리법에 관한 내용을 속독한다.

  해영은 구피가 죽은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물고기도 외로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던데 한 마리만 놓고 키운 것이 문제였나. 다른 사람이 구피를 키웠다면 달랐을까. 달랐을 거야. 해영은 여러 생명을 키울 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구피가 죽었다고 느낀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에 휩싸인다. 나는 왜 이렇게 별로인 거야. 왜, 왜, 왜? 다들 잘만 사는데 해영은 모든 순간이 낱낱이 버겁다. 사랑받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영 점짜리 습관들을 모조리 내다 버리고 완벽한 것들로 갈아 끼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땐 가벼운 악력으로 온기를 전할 줄 알고 건반 위에서는 힘을 줄 곳에만 주는 거, 그런 거. 나도 별거 아닌 것처럼 거뜬히 해내고 싶다고. 주변과 적당히 어울려 살아가는 것 따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그렇게.

  처음 배우실 때 습관을 잘못 들이신 것 같아요.

  피아노 선생님의 말이, 구피를 처리한 뒤 기진맥진해진 해영의 귓가에서 끈질기게 맴돈다. 이내 해영은 손등뼈가 올라오도록 손을 동그랗게 말고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식탁을 향해 두드려 본다. 다섯 손가락 중 한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릴 때는 나머지 네 손가락은 식탁 위에 그대로 부착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약지를 두드릴 때 다른 손가락도 함께 움직이는 습관을 꼭 고쳐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상기하며, 오직 약지 끝자락에만 힘을 주려고 애써본다. 탁, 탁, 탁, 탁. 손가락 한 개당 네 번씩 두드리기, 그렇게 해서 한 바퀴를 돌면 다해서 스무 번. 몇십 번 몇백 번을 두드려야 고쳐질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며 해영은 계속해서 두드린다. 탁, 탁, 탁, 탁.

  일정한 소음을 내다보면 소리를 인지한 구피가 어항 속을 다시 헤엄칠 것만 같다. 해영은 이상하게 간절한 심정이 되어 손가락을 박자에 맞춰 식탁 위로 내려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끝내 물고기는 돌아오지 않을 거고 해영은 여전히 해영으로 남을 거다. 해영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그 밤에는 그래도. 그래도 식탁을 두드려 본다.

  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