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돼지의 배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칼은 느리지만 가볍게 돼지의 배를 파고들었다. 세 마리째가 되었을 때, 서찬은 입을 손으로 막고 나무 뒤로 뛰어갔다. 피비린내와 구역질도 버거운데 할머니의 애원이 깃든 손바닥의 마찰 소리가 서찬의 속을 어지럽게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를 읊는 무당만이 이 좁은 산속에서 바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할머니도, 무가(巫歌)를 연주하는 사람들과도 아닌 오로지 신과. 신과 무당의 소란스러운 대화 주제가 서찬 자신이라는 사실에 서찬은 구역질이 멈추질 않았다. 속에 있는 걸 모두 내뱉고 싶었고 10분 동안 명치를 붙잡고 속이 비워낸 이후에도 불쾌함이 가시질 않았다. 가능하다면 내장마저 꺼내서 몸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싶었다. ‘언제까지 나무 뒤에 숨어있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자마자 서찬은 할머니의 뜨거운 손에 목덜미를 붙잡혀 질질 끝려나왔다. 어떻게 할머니의 목소리만큼은 이 시끄러운 굿 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귀에 꽂히는지, 서찬은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니 땜시 이 지랄이 났는디, 니가 지금 내빼면 어짜는겨?”

 할머니의 손만큼 서찬의 귀도 얼얼해졌다. 서찬은 정말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눈을 뜨면 푹신한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서찬은 할머니께 제발 내버려 달라고 말하려다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 푹신한 이불을 버리게 만든 게 서찬이었기 때문에.

 정말 별 일은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서찬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나자 침대 위에 엎드려 울었다. 한참을 울고 웃다가 모기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침대에 볼품없는 모양새로 울고 있던 서찬을 먹이로 삼아 모기는 배가 터질 정도로 피를 채웠는지 온 팔다리가 부풀어 올랐다. 서찬은 모기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물린 곳이 가려워졌다. 이불을 걷은 뒤에 물어뜯어 엉망이 된 손톱으로 가려운 곳을 긁었다. 아무리 긁어도 가려움은 해소되지 않았고 그저 이불 위로 자그마한 살점들이 떨어져 나오기만 했다. 답답해진 서찬은 눈물로 흐려진 앞을 뚫고 손톱보다 날카로운 것을 찾아 몸을 시원해질 때까지 긁었다. 그뿐이었는데. 단순히 모기 때문이었는데. 마침 집에 반찬을 주러 찾아온 서찬의 할머니가 초인종을 눌러도 서찬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대로 서찬은 응급실에 실려갔다. 정신 병동에 일주일간 입원하고 나왔더니 방 안이 싹 달라져 있었다. 침대 시트와 이불이 흰색으로 바뀌었고 날붙이란 날붙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곤 할머니의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굿 할끼다.”

 서찬은 하고픈 말이 참 많았다. 서찬의 부모님이 없는 이유가 뭔지, 그런 부모 밑에서 서찬이라는 존재가 당연하지 않은지, 말하려다 말았다. 이 말들이 모두 할머니의 마음을 부서뜨리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이미 도륙된 마음을 더 헤집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댁에 돌아가지 않고 서찬의 4평 집에 남아 밥을 하고 청소를 했다. 둘 사이에 말이 오가기보다는, 그저 한 명이 울면 다른 한 명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등을 두드려주는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릴 뿐이었다.

 굿하기 전날, 할머니는 서찬과 함께 서찬의 엄마를 보러 갔다. 서찬의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봉안당은 할머니가 잠든 서찬의 어깨를 툭툭 칠 때쯤 도착해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빈손으로 서찬의 엄마이자 자신의 딸을 보러 갔다. 내가 이리 니를 보러 오는 걸 감사한 줄 알라며 역정을 내고 돌아오는 만남이었지만, 할머니는 발걸음을 끊지 않았다. 할머니는 봉안당에 다녀온 날이면 평소엔 마시지도 않는 소주를 혼자서 2병을 마셨다. 그러곤 딸의 사진을 구겨질 정도로 꽉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정아, 정아, 하면서. 서찬이 화장실을 가려고 잠깐 할머니 앞을 지나가면 할머니는 서찬을 붙잡고 ‘정아, 내 딸아, 이리 나를 보러왔나….’하고 구겨진 사진만큼의 아픔을 서찬에게 주었다. 서찬은 그런 할머니에게 ‘응, 엄마. 내가 보러왔다.’하고 할머니를 꽉 안아주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서찬을 품에 끼고 잠들었다.

 독립하고도 서찬은 봉안당을 갈 때마다 일주일 정도 할머니 댁에 머물렀다. 할머니는 서찬의 늘어나는 상처에도 아무 말 않았고 서찬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둘만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렇지만 암묵적이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얄팍한 것이었고 서찬이 응급실에 실려간 날, 이 합의는 산산조각이 났다. 할머니는 서찬에게 더 이상 서찬을 필요로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굿을 하는 내내 서찬은 할머니가 미웠다. 칼에 찔리는 게 돼지가 아니라 서찬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할머니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걸 넘어 굿을 할 정도로 서찬을 골칫덩이로 보고 있었으니까.

 굿이 끝나고 산에서 내려와 신당에 도착하자, 무당은 서찬과 할머니를 앉히고 얘기했다. 망인천도제의가 잘 끝났으니 이제 걱정 마시라, 하고. 의아해진 서찬이 살풀이 굿이 아니었냐 말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보였다. 할머니는 혼자 소주를 두 병씩 마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있었다. 서찬은 왠지 모르게 입안에서 짭짤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제가 이제야 딸을 보내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찬이를, 우리 서찬이를 드디어 제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서찬의 뒷목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울음 범벅이 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실패했고 이제 서찬은 마음대로 흘러가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