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주사위가 청백색 모래 위로 떨어졌다. 메넨의 눈높이에서 떨어진 주사위는 빙그르르 돌더니 순식간에 푹, 하는 소리를 내었다. 붉은 면에 박힌 검은 한 점이 별빛이 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넨은 허리를 굽혀 모래 속에 파묻힌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푸른 나무가 곳곳에 있던 도시는 발목을 간지럽히는 모래로 가득했다. 인공 태양이 있던 천장은 거대한 구멍이 뚫려서 칠흑의 어둠이 구멍을 비집고 들어왔다. 천장은 여전히 부서져 내리고 있었고 파편들의 추락은 마치 별들이 유리 위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메넨은 손바닥을 펴 모래 알갱이들이 묻은 붉은 주사위 속 한 점을 응시했다.

 메넨은 죽어가는 태양이 내리쬐던 세계에 살았다. 인간은 별의 아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죽음에 발악하는 인간의 본성이 이해가 갔다. 부모 된 별 역시 죽기 직전에 누구보다 밝게 타오르지 않는가. 인간은 틀림없이 별의 아이일 것이다.

 태양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거대해져서 목을 뻗어 위를 보면 하늘이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내리쬐는 붉은빛은 지구 표면을 다 태워버릴 만큼 강렬했다. 피부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날수록 공포감은 극심해졌다. 땅이 녹아 들어가고 식량 생산이 불가능해질 때쯤, 극에 달한 공포감과 함께 인간들도 발악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들이치지 못하는 곳이 필요했다. 인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태양에 저항할 생존 도시를 구축했다. 도시의 핵심은 인공 천장과 인공 나무였는데, 인공 천장에 태양과 가장 유사한 거대 조명을 삽입하여 하루 36시간을 기준으로 잡았고 인공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청정한 공기 공급 및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생존 도시는 수십 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종말하지 않는 한,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불러올 뿐이었다.

 메넨은 생존 도시 바깥의 인간이었다. 메넨과 같은 인간들은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지하를 파 내려가며 태양 빛으로부터 도망쳤다. 생존 도시의 인간들은 이들을 두더지라 불렀고 매주 토요일마다 두더지들을 위한 식량을 나눠주었다. ‘생존 기원’이라는 네 글자가 박힌 자외선 방어복을 입고 지하의 구멍에 음식을 떨어뜨리는 자선 사업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지하에서는 떨어지는 음식에 머리를 맞아 기절한 아이도 있었으며, 음식이 썩어 냄새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일들이 쌓여갔다. 지하의 내부가 쓰레기장이 되어갈수록 생존 도시를 향한 반감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메넨이 잠을 자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난 때에는 형을 중심으로 한 반감자 무리가 생존 도시에 경고하러 간 뒤였다. 메넨의 이불 옆에는 형이 무료하면 버릇처럼 굴리던 태양을 닮은 주사위가 놓여 있었다. 물론 형을 다시 볼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지하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떨어졌다. 메넨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주사위를 굴리는 버릇이 생겼다.

 메넨은 죽어가는 태양에 최적화된 최초의 돌연변이였다. 40살의 메넨은 20살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150살의 메넨 역시 20살의 외형에서 바뀐 것이 없었다. 흑동색의 피부에 빨려 들어갈 듯한 흑빛 눈동자, 큰 키에 근육이 들어찬 두꺼운 몸. 메넨이 늙지 않는 동안 생존 도시의 인간들은 지하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도시 발전을 위해 진행했던 실험의 폐기물들을 도시 바깥에 내다 버렸고 과거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이 지하 입구의 한 곳에 뜨거운 용액을 부어 다른 입구로 지하인들이 뛰쳐나오길 기다렸다. 매주 토요일마다 지하 입구에 음식을 떨어뜨리던 자선 사업은 어느새 종교 행사로 바뀌어 있었다. ‘두더지들을 구원하도다’라는 긴 문구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메넨이 나이를 세는 걸 포기한 시점에는, 태양은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상태였다. 어디를 보아도 실명할 듯한 태양만 가득했고 대기와 바다는 말라비틀어졌다. 지하인들이 전멸한 지는 오래였다. 지하도 결국 타들어 가는 지구 표면일 뿐이었으니, 태양이 대기를 집어삼킨 후에 인간이 멸종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메넨은 자신이 늙지 않는 줄로만 알았지만, 결국 불로라는 건 세포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어떤 환경이 되어도 메넨은 세포가 되살아났고 늙지도 죽지도 않았다. 연이 있던 지하인들이 전멸하고 그들의 시체가 타들어 가 재 한 줌 남지 않을 때가 되어서도 메넨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메넨의 앞에는 벌겋게 빛나는 태양과 태양의 빛을 받아 번쩍이는 돔 안의 생존 도시가 남아 있었다. 메넨은 주사위를 굴렸다. 붉은 면에 새겨진 여섯 개의 점들이 메넨의 검은 눈동자 속을 채웠다. 메넨은 살아야 했다.

 생존 도시는 신소재 연구를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날이 갈수록 잔혹해지는 태양에 맞서 생명을 유지했다. 태양열에 녹아내리지 않는 소재, 자외선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소재, 그러면서도 내부의 열을 급격히 올리지 않을 소재들을 찾아 도시를 보호했다. 태양이 죽음에 발악하는 동안 생존 도시의 인간들도 비슷한 속도로 발악했다. 태양의 발악에 뒤처지는 순간 과거를 회상할 겨를도 없이 타죽을 운명만이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메넨은 이 운명의 처음이자 마지막 예외자였다.

 태양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그 사실이 못내 억울했는지 지구의 땅을 녹이며 자신의 눈물을 대신했다. 메넨은 이 시기가 오기 전에 사랑하는 지하인들이 그나마 편히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잠을 자다 녹아내린 땅에 파묻혀 죽는 건 너무나도 가혹하니 말이다. 녹아내리는 땅을 맨발로 걸으며 메넨은 생존 도시의 지반이 무너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생존 도시는 그들의 지식을 유출하지 않으려 어떠한 소리도 새나가지 않도록 구축되었는데, 땅이 녹아 도시를 보호하는 돔에 균열이 생기자마자 메넨은 그토록 바랐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존 도시 인간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구원을 바라는 소리를.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

 엄마.

 메넨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리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메넨은 그들의 우짖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다. 도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귀를 파고드는 뚜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인공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자외선 방어복을 입지 않은 이들은 순식간에 타들어 갔고 대피했던 이들마저 녹아내리는 땅에 휩쓸려 파묻히거나 쓰러지는 인공 나무와 건물에 깔려 죽었다. 이토록 즐거운 재앙을 왜 그리 두려워했는지. 두려워했던 미래를 현실로 마주한 순간은 생각보다 비극적이지 않았다. 삶을 가르쳐주었던 형과 영원을 맹세했던 친구들과 사랑을 속삭였던 연인과의 찰나에서 메넨은 드디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메넨은 멸종하고 있는, 멸종해 마땅한 인간들의 도시로 걸어 들어갔다. 인간종이 멸종하는 한가운데에서 메넨은 주사위를 던졌다. 두 개의 점. 메넨은 멸종하는 인간의 하나가 되고자 눈을 감았다.

*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눈을 뜰 때가 왔다고. 삶이 또다시 시작됐다고. 메넨은 먼지가 쌓여 뻑뻑해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였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칠흑 같은 어둠과 반짝이는 별들, 떨어지는 파편들이었고 메넨이 누운 자리는 유리 조각 같은 모래들이 산을 이룬 사막이었다. 메넨은 허리를 펴고 삐그덕 소리가 날 것 같은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어릴 적 이불 옆에 놓여 있던 붉은 주사위가 아직도 메넨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메넨은 주사위를 들었다. 눈앞의 허공에서 주사위를 굴려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