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바다의 숨소리. 겹겹이 밀려왔다가 다시 서서히 되돌아가는 바다의 깊은 심호흡.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무언가 다 놔버리고 싶은, 그래도 좋을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희뿌연 하늘 배경에 누군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림자가 져 누군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검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죠.”

 아, 만두 가게 남자.

 “방임 중이요.”

 나는 눈을 감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 반가울 것도 없는 만남이니까. 이 정도의 반응이 딱 적당한 것 같았다.

 “전에 말했던 게 이거군요.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그냥 이렇게 드러누워 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남자가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고 나는 순간 어느 한낮 공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벤치에 앉아있는 나, 그런 내 곁에 조용히 접근해왔던 비둘기 한 마리. 두 생물의 묘한 대치 상황. 비둘기의 언어를 알지는 못하기에 ‘네게 모이 같은 것을 제공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온몸으로 무관심을 표현하려 했었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겹쳐 보였다.

 한참 뒤에도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아 눈을 떠보니 남자는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남자가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나는 곁눈질로 그를 본 후 다시 희뿌연 하늘을 보며 반응했다. 뒷말이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조금 꼴사나운데.”

 남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하고는 입고 있던 야상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러시던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면서도 속으론 훠이훠이-를 외쳤다. 어쩌다 이런 사람과 엮이게 된 건지.

*

 바람이 점차 더 차가워지는 11월 무렵 만두 가게 앞을 지나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만두 찜기가 온몸으로 내뿜는 하얀 수증기가 얼마나 향긋하고도 유혹적인지.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만두 앞에서만큼은 상당히 쉬워지는 사람으로, 그날도 홀린 듯이 만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주문을 마치고 앉자 사장님이 분주하고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담아낸 김치만두가 금세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는 곧장 통통한 만두 하나를 집어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런데 옆에서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옆에 앉은 남자가 내 만두 접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접시에는 고기만두가 담겨 있었다.

 “이 집은 섞어 팔지를 않잖아요.”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뗐다.

 “네?”

 “고기만두 6개. 아니면 김치만두 6개. 이렇게요. 근데 저는 어떤 날엔 4개, 2개 아니면 1개, 5개 이렇게 먹고 싶기도 하거든요. 여기는 무조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까, 매번 아쉬워진달까요.”

 남자는 말을 마치고는 원하는 답변이 있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떻게, 바꿔 드려요?”

 남자는 말이 끝나자마자 환하게 웃더니 좋은 생각이라면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기만두를 내 접시 위에 올려놓고, 내 김치만두 한 개를 가져갔다.

 “다음부터는 그냥 물어봐요. 빤히 쳐다보고 있지만 말고.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아요.” 

 “더 이상한 것도 있는데 말해줄까요?”

 내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도 남자는 혼자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는 뭐가 먹고 싶은지 보다도, 그날 감정 상태에 따라 어떤 만두를 먹을지 결정해요. 슬플 때는 푸근한 위로를 주는 고기만두를, 열받거나 짜증날 때는 매콤한 김치만두를 먹죠.”

 나는 남자의 만두 접시를 내려다봤다.

 “맞아요. 오늘은 조금 슬픈 날.”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키우던 식물이 시들어 슬퍼했고, 문득 자신이 반박할 수 없는 어른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껴 슬퍼했고, 요즘따라 보고 싶은 영화도, 책도 없음에 슬퍼했다.

 나는 그가 말을 하는 내내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느끼는 슬픔이 나와 상당 부분 비슷해서이기도했지만, 그것보단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태연하게 자신의 우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신기해서였다. 어떻게 슬픔 앞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지. 그래서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 뒤로도 몇 분 동안 이어가다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끝냈는지 손을 물병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이제 당신의 차례라는 듯 내 물컵에 물을 따랐다. 나는 입안에 있던 단무지를 삼키며 생각했다. 우린 지금까지 서로 몰랐고, 어쩌다 오늘 알게 됐고, 하지만 앞으로는 서로를 모를 것이다. 잠깐 스치듯 만난 사람. 앞으로 볼일 없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유리문 밖에서 구름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어제는 마트에 갔는데 살구가 없어서 울었어요.”

 나는 괜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살구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혼자서 자주 슬퍼해요?”

 남자는 놀라지도,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별일 아니라는 듯 물었다. 나는 말없이 남자의 고기만두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곤 만두를 우물거리며 테이블 위로 나의 기다랗고, 가느다란 슬픔을 늘어놓았다. 모닝커피를 쏟아서,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쳐서, 낙엽이 떨어져서, 문득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서 슬퍼했던 일들을. 혼자라 슬프고 또 함께라 슬픈, 반복되는 이상한 나날들을 향한 탄식을. 남자는 내 접시 위에 자신의 고기만두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

 이상하고도 슬펐던 만두 교환식 이후로 나는 남자와 종종 마주쳤다. 만두 가게에 가는 것을 일부러 피했음에도 동네 주민의 생활 반경이 거기서 거기인지, 길거리나 공원, 마트에서 생각지 못하게 만났다. 나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깊은 이야기를 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더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았기에 시선을 돌렸지만 남자는 매번 말을 건네왔다. 그리고 지금도.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귓가를 맴도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한가해요?”

 내가 묻자 남자는 느리게 뒷걸음질 쳐 다가오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아니, 그날 얘기 듣고 나서 마트만 가면 자꾸 과일 코너를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한가한가 보네.”

 “들어봐요. 그래서 여기저기 계속 찾아봤거든요.”

 “살구?”

 “응.”

 “찾았어요?”

 “못 찾았지. 그건 요즘 못 구한대요.”

 살구가 없다는 얘기를 또 들었지만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남자를 의식적으로 피할 때보다 마주치고 잠깐씩 대화를 나눌 때마다 슬픔도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다.

 “왜 요즘 안 와요?”

 남자가 물었다. 아마도 만두 가게를 말하는 거겠지.

 “나 기다려요?”

 “뺏어 먹는 사람이 없으니까 긴장감이 부족하다고 해야 되나.”

 “그건 그쪽이 먼저…! 내 것도 나눠 줬잖아요. 정정당당한 교환이었죠.”

 “알겠으니까 와요. 내 거 다 먹어도 뭐라고 안 할게요. 울더라도 거기 와서 울어요. 거긴 어차피 앞이 뿌옇잖아요. 울어봤자 잘 보이지도 않아요.”

 나는 계속 하늘을 보는 척하며 남자에 대해 떠올려봤다. 처음 보는 사람 만두 접시를 빤히 쳐다보는 이상한 사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꼴사납다는 말을 던지는 무례한 사람. 그런가 하면, 나보다 훨씬 슬픔에 익숙한 사람. 울지 말라 하지 않고, 그냥 울으라고 하는 사람. 계기는 우연했고, 방식은 이상하지만, 꼴사나운 내 옆에서 같이 꼴사나운 짓을 하는 사람.

 “배고프지 않아요?”

 ”좀 출출한데요.”

 나는 일어나 모래를 털고 그에게 만두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살구가 없어 울었다면 살구가 있어서 웃을 일도 있는 것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