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물류회사에서 일했다. 택배 전성기인 시대에 물류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말 그대로 몸을 갈아 넣는 행위와 같았다. B는 허브 업무자였고 허브로 온 택배들을 분류하고 상하차하는 작업을 했다. B가 퇴근하고 씻기 위해 옷을 벗으면 팔이고 등이고 온통 멍투성이였고 어떤 때에는 다친 줄도 몰라 피가 흘러내린 채 굳은 부위도 있었다. B는 굳은 피딱지들을 손으로 털어내며 다음날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상상을 했다. 하루라도 출근하지 않으면 B는 그동안 일한 만큼의 퇴직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B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감기에 걸려 미열이 잃어도 움직일 수 있으면 출근했고 손발목을 삐어 염증이 나면 퇴근 후 24시간 약국에 들러 염좌약을 사서 먹고 파스를 대충 붙이고 출근했다. 심지어는 몇 없는 휴일에 대타가 들어와도 “알겠습니다.”하고 출근했다. 물류회사 내에서 B는 ‘대타봇’이라고 통용되고 있었다.

 B의 친구들은 그런 B에게 쉬는 게 어떻냐고 걱정했지만, B는 “괜찮아.”라는 말로 친구들애개 대답했다. B의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다. 친구들 모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친구들도 B 못지않게 바쁘고 힘들었기에 캐묻지 않았다. 미용사인 N은 원장이 부르면 미용실과 미용 도구를 청소하러 가야 했기에 최고 볼륨으로 설정한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고 알람이 오면 자다가도 미용실로 뛰어갔다. 카메라 스태프인 D는 자신의 키보다 큰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콜타임에 맞춰 새벽 3시에 출근하기도 했다. 대기시간에 쪽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이직 준비 중인 J는 일을 떠맡기는 상사 때문에 야근이 기본이었다. 약간의 실수라도 있으면 아침마다 상사에게 회의라는 명목하에 불려가 크게 혼이 났다. 완벽하게 해낸 일들은 J의 실적이 아닌, 상사의 실적으로 등록됐다.

 B와 친구들 사이 암묵적인 규칙은 징징거리지 않는 것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걱정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걱정받는 사람 역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고 괜찮다고 답했다. B는 자신의 힘듦이 자기연민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힘겨움이 터져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될 서로의 힘겨운 이야기들을 들을 힘도 없었다. 무엇보다 B는 스스로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년 전부터 B는 가끔 가슴께가 저릿했다.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감각이 잦아지면서 눈앞이 핑그르르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B는 술담배를 하지 않았고 아침과 점심을 거르지도 않았다. 요즘 몸이 피곤한가보다, 하며 한 번 날을 잡고 병원을 가야겠다고 B는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에 퇴근하면 병원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주말에는 응급실 외엔 갈 병원이 없었다. 야간 진료 병원은 집과 멀었고 응급실은 비쌌다. B는 그저 몸이 너무 아픈 날에는 타이레놀 세 알을 자기 전에 삼키고 다음 날 6시에 일어나 출근했다. B는 주변 동료들이 병가든 휴가든 하루 이틀 쉬고 돌아오면 주휴 수당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적잖이 목격했다. B에게는 줄어들지 않는 빚이 피부처럼 붙어있었다.

 하차하는 물류를 허리에 올렸다. 평소 들던 크기의 택배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고 또다시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이 빙그르르 돌아가는데, 3D 흑백 무성 영화를 보는 듯했다. B는 정신을 붙잡고 택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택배에 손상이 있으면 검수 관리자에게 욕을 들어먹었기 때문에 떨어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B는 택배를 내려놓고 바닥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누가 숨을 불어넣어 줬으면 했다. B가 겨우 눈을 떴을 때는 30분이 지난 후였다. B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었다. 지나가던 동료 아저씨가 B에게 말했다.

“B, 앞에 있던 택배는 내가 옮겼어. 사고 나면 어쩌려고 바닥에 누워있어? 내가 택배 옮기는 김에 니도 이쪽으로 옮긴겨. 거, 졸리면 의자에 앉아서 자. 점심시간도 아닌데 이러고 있었던 거 그 얍샙이들이 신고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B는 아저씨의 말에 “감사합니다.”하고 답했다. 주머니 속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물 없이 목 속으로 집어넣었다. B는 엉덩이를 털고 택배 하차지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