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도로 열렸다. 그 틈으로 몸을 한껏 구긴 이영이 걸어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네 명의 아파트 주민은 모두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슬리퍼에 잠옷바지, 보풀이 난 코트 차림. 질끈 묶은 머리. 볼품없는 그녀는 시종일관 미간을 구기고 자기 발끝을 응시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심각한지, 감지 않아 꼬질꼬질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정수리 위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들을 태운 별 볼 일 없는 기계가 고도를 갱신할 때마다 이영의 표정은 점차 심하게 일그러졌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호흡이 가빠왔다. 긴 하루를 보낸 뒤였다. 5층쯤에 이르자 이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벌어진 입으로 공기가 쉭쉭거리며 지나다녔고, 그 사이로 맹수의 것처럼 거칠고 커다란 치아가 여러 개 드러났다. 그 모습은 공간의 3면을 둘러싼 거울을 통해 수십 번 복사됐고, 그때마다 그녀의 숨소리가 배로 커졌다.

 저기… 다들 괜찮아요?

 이영은 헐떡거리며 다른 승객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승강기에 여전히 네 명의 주민이 타고 있었음에도. 버튼 앞에 서 있는 등산 잠바 차림의 아저씨도, 구석에서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으로 핸드폰을 두드리는 고등학생도, 이영 오른편에 얼이 빠진 채 서 있는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도, 양손에 장 본 거리를 가득 든 아줌마도. 아무도 이영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이영은 천천히 숨 몰아쉬기를 멈췄다. 9층이었다. 거울 속 자기의 복제본들과 눈을 마주친 뒤였다. 이영은 11층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겉모습과 숨소리가 모두 흉하고, 미간을 찌푸린 모습도, 미간을 찌푸리게 된 사연도, 멀쩡한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말을 거는 것도, 이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일 자체도 모두 끔찍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후로 엘리베이터에는 정적이 흘렀다. 엘리베이터 내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조악한 광고 음악만이 공간을 미세하게 찔러댔다.

 15층. 이제 이영을 포함한 승객들은 모두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미래를 봤다. 미디어에 박제된 과거와 통계와 과학이 엉성하게 그린 미래. 그것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과 귀와 살갗은 온통 과거와 미래로 쪼개져 팔려 간 뒤였다. 그들은 아주 희미하게 남은 시력으로 고작 자기 앞의 닫힌 엘리베이터 문 정도만 식별할 수 있었다. 이들이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된 것인지는… 알아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덜컹 멈췄다.

 멀뚱히 서 있던 이영 오른편의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꾸웨엑 꾸웨엑. 도살을 앞두고 슬프게 우는 돼지처럼. 왜소하게 축 처진 어깨가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벌벌 떨렸고, 그 진동은 주변으로 전달됐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비명은 이영에게, 아줌마에게, 고등학생에게, 젊은 남자에게 줄줄이 번졌다.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속 공기가 달아올랐다. 이영은 점점 엘리베이터가 부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몇 층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추락하면 어쩌지. 걱정하면서도 비명을 멈출 수 없었다.

 꽥꽥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며 이영은 이제야 조금 덜 외롭다고 생각했다. 다들 어떻게 참고 있었던 거야?

 이영은 일그러진 얼굴들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종종 이렇게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하지 않게 해달라고. 차라리 멈춰 있거나, 땅에 처박히거나, 하늘로 솟아오르거나, 쪼그라들거나, 지금처럼 팽창하게 해달라고.

 팔려 간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만. 우리가 이 압력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만. 가쁜 숨을 구태여 숨기지 않아도, 울음을 모래로 덮지 않아도 용서받을 수 있을 때까지만. 자주 이렇게 멈추게 해달라고.

 이영은 눈을 감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거친 소리들이 그녀의 몸을 이끌었다.

 엉엉 꾸웨엑 흑흑 꺅 우웩 으아악 끅끅… 다가갔다. 그들의 비명 소리에 자기 고막이 찢길 때까지. 꺽꺽 신음하는 성대가 자기 성대에 포개질 때까지. 가까이, 더 가까이. 그 순간이 자신에게 선명한 상처를 남기도록. 그날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이날 이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무사히 내렸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므로. 이영의 기도가 이루어져 이후로도 종종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는지도, 알 수 없다. 그건 미래의 일이므로. 다만 이들에겐 활화산 같은 상처가 남았다. 눈과 귀는 다 빼앗겼대도, 몸의 쓰라림은 아주 분명했다. 몸은 말했다. 아프고, 슬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