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첫눈이 내린다. 교도소의 창문은 령솬이 살던 집보다 훨씬 커다래서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순간들을 눈에 차근히 넣어둘 수 있었다. 한 눈송이를 꼭 집어 하늘에서 땅까지, 느릿한 찰나의 장면을 도중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시하는 일이 오늘 령솬이 쳥완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쳥완은 령솬의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방을 함께 썼던 사이.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공식적으로는.

 령솬과 쳥완은 같은 국가에너지 자원 발전소에서 일했다. 부서는 달랐지만 둘 다 같은 지부에서 3교대로 일했고 발전소에서 제공해주는 거주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발전소 제공 거주지여도 월세와 관리비는 내야 했고 돈을 모으고 싶었던 령솬과 쳥완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돈 고민을 하던 둘은 전체 부서 회식에서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말을 트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 시끄러운 회식 장소에서 둘은 거주와 재정 얘기를 하다 집을 합치기로 합의하였다. 다음날, 쳥완은 정말로 령솬의 집에 짐을 챙겨 입주하였다.

 말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이였음이 무색하게, 령솬과 쳥완은 아주 잘 맞았다. 식성이나 생활방식, 유머 코드까지 안 맞는 게 없을 정도로 비슷했고 그만큼 서로를 배려했다. 3교대의 시간표가 극단적으로 다를 때에도 둘은 서로를 배려해서 언성을 높일 일이 없었다. 서로 시간표가 맞을 때는 같이 집에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고 어느새 둘은 3교대 시간표를 맞추고 있었다.

 령솬은 퇴근 후에 돌아간 집에 쳥완이 다녀왔냐며 반겨주는 시간을 좋아했다. 차갑고 어두컴컴한 집에 스스로 불을 켜야 하는 집이 아니라, 쳥완의 손이 닿아 밝혀진 집이 좋았다. 쳥완 역시 퇴근하고 돌아간 집에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령솬을 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령솬이 식사를 준비할 때면, 쳥완이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꼭 만들어주었다. 쳥완은 령솬의 계란말이를 누구의 것보다 가장 좋아했다.

 발전소 사람들은 둘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내서 다행이라 했다. 언제 그리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는지 물어보곤 했으나, 령솬과 쳥완은 매번 서로 친구가 아니라고 답했다. 령솬은 쳥완에게 친구이고 싶지 않았고 쳥완은 령솬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무슨 사이인가 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은 룸메이트가 끝이었다. 발전소 사람들은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비즈니스냐며 웃고 넘어갔다. 웃지 못하는 사람은 령솬과 쳥완 뿐이었다. 둘은 친구가 아니었으나 그 이상의 특정되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나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령솬과 쳥완은 친구와 그 이상의 관계 사이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었다.

 쳥완에게 타 지부로 발령이 내려진 날에 쳥완은 령솬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다음 날, 쳥완은 발전소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령솬의 손을 잡았던 쳥완의 손만 기계 밖에서 굴렀다.

 CCTV에는 쳥완과 친한 동료 직원이었던 페쟝이 사각지대 끄트머리에서 쳥완을 기계로 민 장면이 있었다.

 일주일 뒤, 페쟝은 쳥완이 끼였던 기계에 똑같이 끼여 사망했다.

 페쟝의 시신이 수습되기도 전에, 령솬은 쳥완의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범죄 동기가 무엇이냐는 검사의 질문에 령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령솬은 무기징역 15년을 받았다.

 령솬은 그날, 쳥완이 자신에게 키스한 그 날의 자신을 후회했다. 발령 가기 직전에야 마음을 전한 쳥완이 처음으로 미웠다. 령솬이 던졌던 작은 진심들을 쳥완은 매번 모른 척하더니 갑작스럽게 정의하지도 않은 관계를 종결시켜 버렸다. 령솬은 쳥완을 붙잡고 관계를 정의할 용기가 없었고 쳥완은 관계를 정의할 생각이 없었는데, 쳥완은 행동 하나로 모든 걸 끝내버렸다. 령솬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무수한 단어 중에서 날카로운 단어들만 골라 쳥완에게 던졌다. 기억나는 말은 씨발 정도였다. 령솬은 쳥완을 바닥으로 밀고 집을 나갔다. 그러고 다음 날 쳥완이 사망했다.

 사실 령솬은 욕 대신 쳥완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령솬은 그날 이후로 항상 손과 입술이 저릿하게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