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오늘도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사랑해요.”

 네가 사랑해요,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결혼 1주년 때부터였다. 사랑해요라니. 한 글자만 더 붙었을 뿐인데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서로를 더 존중하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날부터 주욱 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조금 뜸을 들이면 너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사랑해요.”

 그럼 나도 마지못해 말한다. 진심은 속이고 네가 원하는 대답을 한다. 솔직히 나는 이 결혼 생활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나와 혜지는 스무 살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당시 소규모 천문학 동아리의 둘뿐인 신입 부원이었다. 인원수가 적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한 일이 생겼다. 지루함을 느낀 선배들이 나와 혜지를 수시로 엮어댔던 것이다. 처음엔 몹시도 귀찮았지만 귀가 얇았던 나는 점차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사랑이라 착각하기 시작했고 결국 혜지에게 고백을 했다. 혜지가 내 고백을 받아주는 것도,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결혼을 택할 때 내가 더 신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차갑고 조용한 집과 비어버린 마음, 나를 보는 혜지의 눈빛까지 모두 지겹기만 하다.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어두운 집 안에서 네가 작은 불빛들을 껴안고 걸어왔다.

 “짠! 놀랐지? 우리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 또 잊고 있었겠지만.”

 모른 척 넘어갈까 했는데, 어쩌면 너도 이제는 그럴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이 피곤한 기색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애써 지어 보이는 미소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드레스룸 문 틈새로는 어스름한 불빛이 비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참, 목요일이구나.

 우리는 마주 앉아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너는 내 눈치를 살피며 이것저것 물어봤고 나는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답했다. 혀 위를 미끄럽게 코팅하는 식물성 생크림처럼 우리의 대화도 언제나 표면을 겉돌기만 한다.

  “사랑해요.”

 잘 준비를 마친 내게 네가 또 말했다. 나는 기계처럼 네 말을 따라 내뱉었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오늘의 연극도 막을 내린다. 그제서야 나는 부드러운 숨을 내쉰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옆방의 네가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바람을 타고 네 목소리가 내 귓가로 불어온다.

 “사랑해요.”

 이렇게 달콤할 수 있는 목소리였나.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너의 달라진 말투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처음부터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 너의 연애를 유난히도 부추겼던 선배 중 하나. 진지한 얼굴로 장난을 치던 그 선배를 넌 유독 어려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선배에게는 늘 존댓말을 쓰는 너였다. 너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그 선배를 바라보곤 했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의 모양이 사랑과 닮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즈음이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만 너를 생각하기로. 상처받지 않고 너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나는 굳이 묻지 않는다. 네가 새벽마다 누구와 전화를 하는 건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무얼 하고 들어오는 건지. 네가 오래도록 느껴온 감정이 무엇인지도.

  매일 아내에게 질려버린 남편 연기를 한다.

 그럼 넌 웃는 얼굴로 조금은 편히 내게 말한다.

 “사랑해요.”

 네 입술이 움찔거린다.

봄바람에서 쌉쌀한 맛을 느낄 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