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호《거짓말》: 시선

18편째 풋소설

2024. 4. 26.

🍏 4월호《거짓말》: 시선

18회 (2024.04.27)

4월호 주제 《거짓말》

시선

진희

며칠 전, 모운은 이사를 왔다. 삭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도시에서 벗어나 그토록 바랐던 바다 앞으로. 모운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이유는 모운도 몰랐다.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무언가가 바다에 있는 것만 같았다. 치여 살던 도시에서 죽어라 일해 목표 금액을 달성하자마자 모운은 미련 없이 바다로 떠났다. 담담해보이지만 은근히 충동적인 구석이 있는 모운은 집 계약과 동시에 사표를 내고 도시에서 벗어났다. 캐리어 하나를 끌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쾌쾌한 모텔에서 지내다가 드디어 정식으로 바다가 앞에 있는 집에 입주했다.

이삿짐 정리나 방 청소나 이것저것 할 게 많았지만, 모운은 이사 기념으로 제일 먼저 바다를 느끼러 나갔다. 모운은 바다를 옆에 끼고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었다. 바닷소리가 모운의 귀에 맴돌았다. 파도치는 소리, 새가 끼룩거리는 소리, 파도가 모래를 빠져나가는 소리…. 모운은 특히 모래가 자신의 발 사이에 이면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좋아했다. 시원하게 발을 감싸는 촉감이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얕은 바다에 들어가서 발을 담그기도 하고 혼자 노래를 웅얼거리기도 했다. 모운은 이른 아침에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덩치가 크고 검정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나무 밑에 앉아있던 남자는 피던 담배를 마저 다 피운 후, 모운을 쳐다보고 사라졌다. 모운은 의아했지만 다시 바다를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 이삿짐 정리를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모운은 바다로 나갔다. 모운은 맨발로 모래를 걷다가 바다로 들어갔다. 여름이라 차지 않는 물 덕분에 편안히 바다에 몸을 맡기고 누웠다. 편안히 물과 놀다가 모래사장으로 나오니 또 그 남자가 있었다. 어제와 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피고 있었다. 모운이 나오자 한 개비를 더 꺼내 피더니 아무 말없이 모운을 쳐다보고 사라졌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다다다음날도. 어김없이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달라진 건 날이 갈수록 피는 담배 개비 수랑 모운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처음에 모운은 의아해하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지만, 어느샌가 모운은 남자에게 지지않겠다는 의지로 똑같이 남자의 선글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와 모운이 바라보고 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10일째 되는 날, 모운은 남자의 눈이 맑은 바다를 닮은 옅은 파란색이라는 걸 알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운은 어김없이 바다로 나갔다. 이제는 아침에 바다로 나가 남자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남자는 멀리서 바다로 걸어오고 있었고 모운은 집 근처에서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피곤한 듯 나무 밑에 앉아서 바다를 멍하니 보았다. 모운은 바다를 지나쳐 남자에게로 갔다. 모래의 느낌이 어떤지, 바다소리가 어떤지 느낄 여유가 없었다. 모래가 발에서 빠져나가듯 남자가 사라질까 모운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빠른 걸음을 하며 다가갔다. 모래는 시원했고 옆에서 파도가 바닷물을 튀겼다. 나무에 도착한 모운이 남자 옆에 서서 빤히 쳐다보자 남자는 피려던 담배를 내려놓고 모운에게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안녕.”

모운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남자의 인사에 대답했다.

“바다 좋아해요?”

남자는 웃으며 모운을 바라보았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