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서울의 조류 분포에 대해 생각하다 이방인이 되었다. 캐리어를 끌고 초록색 버스를 타야했을 때나, 추운 겨울 자질구레한 짐을 온 겨드랑이에 잔뜩 끼고 닭장같은 원룸 안에 들어섰을 때. 촌스러운 핫 핑크색에 말도 안되는 영어가 적혀있는 양말을 신는 사람들 대신 한 장에 10만원이 넘는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을 때. 내 눈을 완전히 사로잡게 만들거나 혹은 나를 완전히 닫히게 만드는 서울은 그렇게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곤 했다.

  다녔던 초등학교는 논 옆에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논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종점 버스는 30분이 넘도록 출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를 둘러싼 논을 등지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살던 강아지인 수만이와 논 밭 옆으로 산책을 다녔다. 수 많은 사랑을 받으라 기껏 이름을 지었건만 사람들은 이름을 듣고 웃기만 했다. 봄과 가을 사이쯤 논밭은 푸드덕댄다. 그 아래엔 두더지인지 너구리인지 뱀인지 모를 것들이 살았다. 수만이는 언제나 철썩대는 바람을 향해 짖었다. 광활한 밭의 주인들이 걱정되곤 했다. 작물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작은 짐승은 밭 주인의 굽은 허리를 더 굳게 만들었다. 수만이는 내가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면 금세 외부 소리에 흥미를 잃고 다시 흙길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 털이 흩날렸다. 사람이나 개도, 벼도 각자의 털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걸을 수 있었다.

  주변엔 주택들이 많았다. 주택에 사는 친구들도 많았다. 아파트가 하나 생기기 시작하니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다른 건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바닥과 높이가 비슷한 집에서 사는 애들은 길고양이가 무섭다고 했다. 새벽이 되면 고양이들은 갓난 아기처럼 울었다. 성인의 신체보다 유아 신체가 더 가까운 내 작은 친구들은 그 소리를 듣고 벌벌 떨며 잠에 들었다. 몇 번 듣고 나면 익숙해진다고도 했다. 막 태어난 아기의 비명 소리에 적응하는 친구들의 삶이 있었다. 우리는 개구리 소리로 인해 잠에 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개구리는 한계없이 소리를 내지르는 생물임을 누군가들은 평생 모르기도 했다. 5층에 살던 우리 가족은 그 예의없는 합창을 즐기곤 했다.

  비둘기는 사람들 사이에 모였다. 서울은 비둘기가 살기에 좋은 도시이다. 길바닥엔 그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것과 그들의 배를 곪게 만드는 것들이 가득했다. 비가 오면 번떡거리는 크고 아름답고 지저분한 새는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날개 대신 두 다리로 걷는 새와 두 다리를 갖고도 제대로 땅을 딛지 못하는 나는 꽤 어색한 사이로 남았다.

  참새는 나무 위에 모였다. 논과 가까운 초등학교 앞 나무길은 참새가 살기에 적합했다. 그들은 언제나 나뭇잎 아래에 몸을 숨기고 고함을 질러댔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무는 흔들렸다. 나는 그 아래를 지나다니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고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내 위에 무수히 많은 참새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혹여 새똥을 내게 잔뜩 싸버리진 않을까. 다같이 내게 달려들진 않을까. 참새들은 서울에 살 수 없음을 알기에 내 머리 위에 자리잡은 것 뿐이었다. 나는 그게 참 두려웠다.

  모르는 남자가 내게 사탕을 건냈다. 사탕을 내 돈으로 굳이 사먹지 않은지 몇 년이나 된 것 같다. 함께 논밭을 등지고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던 나와 친구들은 각자의 버스를 찾아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 서로 말도 없이 다만 몇 가지 귀중한 짐을 그 논밭에 남겨두고 떠났다. 이젠 완전히 성인의 몸을 갖게 되었고 그만한 권한도 갖게 되었다. 이성에 대한 끌림과 받는 관심에 대한 상기되는 단순한 감각도 어느 정도 학습했다. 난 모르는 사탕 앞에서 고개를 두 번 저었다.

  “민수야.”

  사탕은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어린이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내가 기억하던 어린 얼굴들은 하나같이 보송거리고 콧물을 질질 흘림에도 저들끼리의 멋을 지키려 용을 쓰는 추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 중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영은은 그때도 근사한 차림을 고수하는 학생이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같은 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수없이 많았다. 등교길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유머 코드로 이루어진 시끌법적한 웃음이 대부분이었다. 화장도 사치품도 불가능한 획일화된 공간에서 근사하기란 오직 그 애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걔는 말을 근사히 하지도 않았다. 내게 다정한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어보였고 체육시간이 되면 열정적으로 공을 잡았다. 내가 그 애가 신은 헤진 신발이 멋스럽다 느낀 것은 그의 근사한 행동력과 목소리와 나를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둘기밭 사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는 참새밭 아래에서 콜팝을 사먹었다. 영은은 콜라를 좋아했다. 매점에 들어가 코카콜라 한 캔과 고기는 한 점도 들어있지 않은 냉동 닭강정을 사먹었다. 집이 가까운 편이었다. 나는 내게 과분한 그 애가 나와 함께 손을 잡은 것이 신기했다.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참새는 너무 시끄러워 서로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날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참새에게 감사했다. 내 숨소리도 심장 소리도 그들의 지저귐 덕에 전부 말소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참새를 보면 영은의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마주하는 참새는 내게 동화 속 파랑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날의 키스는 키스라고 부르기도 애매모호할 정도로 짧았고 둔탁했으며 어리숙했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영은은 도망쳤다. 내가 멋지다고 느꼈던 그 애의 행동력에 결말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영은을 따라하지도 이해하지도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비둘기 옆에 서있는 영은은 여전히 근사했다. 영은은 콜라맛 사탕을 내게 건냈고 나는 모르는 사탕에게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콜라를 좋아하니. 단 것을 좋아하니. 너도 너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참새 소리가 가끔 생각나니. 서울의 참새를 보면 꼭 파랑새를 만난 것 같니.

  영은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민수가 아니었다. 그에게 민수일 수가 없었다. 깔끔하게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영은은 그때처럼 세련되었지만 그는 너무나 많은 비둘기 옆에 서있었다. 나 역시 비둘기와 함께 서있었고 제대로 날 줄 모르는 것 같은 새와 제대로 걸을 줄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