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은 보라색 조끼 구멍에 팔을 집어 넣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점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색으로 물든 모습이 작업 준비 완료를 뜻했다. 지난밤 와카볼 경기를 보느라 새벽 다섯 시가 다 돼서야 잠에 들었지만, 세 시간만 자고 출근한 것 치곤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이번 경기는 승부가 날듯 말듯 아슬아슬한 상황이 몇십 차례나 계속됐다. 그 덕에 중간에 TV를 꺼 버린 사람은 그 수의 제곱쯤 됐을 터였다. 긴장감을 넘어 지루함으로 범벅된 경기였다.

 “17-A번, 더럽게 못 하던데.”

 같은 보라색 조끼를 입은 막킨이 신발 커버를 신으며 말을 건넸다. 막킨도 어제 와카볼 경기를 응원하다 지친 관중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젠과 달리 눈 밑 다크서클이 유독 짙어 보이는 이유는 막킨이 이번주 주말 근무 당번이기 때문이리라.

 17-A번은 지난 와카볼 시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 주며 MVP를 거머쥔 유망주였다. 긴 다리로 민첩하게 경기장을 누비며 공을 다루는 모습은 한 경기를 다 보지 않아도 그가 굉장한 실력자임을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이번 경기 때는 다소 자만했던 탓인지 결과가 좋지 못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사람은 17-A번 장본인일 테였다.

 “알아. 그래도 이겼으니 더 논할 필욘 없지.”

 젠은 막킨에게 가볍게 대꾸하고는 소독실로 향했다.

 소독을 마치고 작업실로 들어가니 단 냄새가 진동했다. 언제 맡아도 설레는 냄새지만, 언제 맡아도 머리가 띵할 정도로 지독한 단 냄새다. 소문으로는 막시머셀이 삼백 서른 세 번의 도전 끝에 만들어낸 향이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안녕하세요, 살란데이아 아줌마.”

 “안녕, 젠. 좋은 하루야.”

 살란데이아 아줌마는 와카볼 경기에는 관심이 없으셨는지 평소처럼 온화한 표정이었다. 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여유를 가진 아줌마는 공장 내에서 가장 오래 일한 근무자다. 젠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사탕 포장 방법과 기계 사용법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셨던 사람도 살란데이아 아줌마였다. 아줌마의 따뜻한 마음씨는 젠이 살란데이아 아줌마를 곧잘 따르도록 만들었다. 그 덕에 조금은 거친 공장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어떤 것보다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겁니다. - 막시머셀의 레인보우 캔디(포도맛 )- ’

 가로로 길쭉한 타원 모양의 스티커를 떼어 상자 위에 붙였다. 오늘 작업량은 약 2000박스 정도였다. 빠르게 작업을 마치고 퇴근 후에 와카볼 경기를 보러 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도 어제와 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오늘은 가차없이 잠을 택할 테다.

 젠이 사탕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 호기심에서였다. 모두들 처음에는 그의 사탕이 평범한 사탕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호기심이나 의구심에 한 번 먹어보고 나면 무심결에 ‘막시머셀의 레인보우 캔디’를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실제로 그런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도 하지만 ‘막시머셀의 레인보우 캔디’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경험은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젠이 포도맛 라인에 지원한 이유는 포도맛이 선사하는 ‘포도만큼 상큼하고 몰랑이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렌지 맛의 ‘오렌지의 알맹이처럼 탱글하고 통통 튀는 하루’나 참외 맛의 ‘참외껍질처럼 선명하고 튼튼한 하루’도 좋았지만, 그냥 포도맛이 아주 조금 더 좋았다. 포도맛 특유의 몰랑거리는 촉감이 좋았다.

 다들 젠과 비슷한 이유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사탕 생산 라인을 지원하곤 했다. 사탕이 유독 좋다거나 사탕에 남다른 열정이 있기보다는 막시머셀 캔디에 대한 궁금증과 탐험심을 실행으로 일궈낸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그날 젠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로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