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난 건 17살 집 앞 편의점에서였다. 집 앞 편의점 알바생은 유일하게 나에게 담배를 팔았고 대신 난 알바생의 도둑질을 눈감아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콘돔을 몰래 훔쳐 가는 알바생이었다. 다른 알바생과 교대할 때 주머니에 콘돔을 몰래 넣고 나가다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나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 뒤로 우리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시작됐다. 나는 매번 보헴시가 미니를, 알바생은 듀렉스 콘돔을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거래를 한 지 4달쯤 지나자 여름이 시작됐다. 나는 그때고 지금이고 여전히 여름이 싫다. 여름은 강압적이다. 드러내기 싫은 것들을 강제로 드러내게 만든다. 싫으면 더워 죽던가, 하는 여름의 태도는 무례하다. 어쨌든, 여름이 시작됐고 춘추복에서 하복으로 바뀌는 시기가 되었다. 팔을 드러내는 하복을 입기는 싫었지만, 유난스럽다며 벌점을 주는 선생님 때문에 결국 하복을 입게 되었다. 교복 하나로 벌점을 받는 상황이 억울했다. 더 억울했던 건 바라는 대로 하복을 입었더니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냐며 잘하는 짓이라고 불려가 혼났다는 거다, 볼펜으로 머리를 탁탁 때리던 얄미운 손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순간적으로 손목을 잡고 꺾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충동과 한숨을 눌렀다. 충동과 한숨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온몸에 굴러다녔다. 수많은 시선과 소리를 듣고 드디어 밤이 되었다. 하루를 끝내려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갔다.

 “보헴시가 미니요.”

 오늘은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이전과 달리 볼캡을 푹 눌러쓰고 삐딱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입은 옷도, 자세도 분위기도 회색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미쳤나 싶었다. 너는 고개를 드는 척도 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신분증이요.”

 “네?”

 “신분증요.”

 그제서야 이전 알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전 알바생보다 키는 크지만 얇은 체형이었다. 전반적으로 날렵하게 생겼지만, 분위기나 목소리는 정반대였다. 이런 사람을 이전 알바생으로 착각한 내가 웃겼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교복을 입고 이 무서운 느낌의 사람에게 당당히 담배나 달라고 했다는 거였다.

 “담배 사려는 사람치곤 성의가 없으시네요.”

 침묵을 깨고 네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네가 내 손목을 잡고 손에 무언갈 쥐어주었을 때, 깜짝 놀라서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

 “돈은 안 받을게요.”

 내 손에는 작은 과일 사탕 하나가 놓여있었다. 취향이 꽤나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냥 사탕 껍질을 까고 입에 넣은 후 편의점을 나갔다. 달았다. 단 건 질색이었다. 살짝 녹은 사탕을 시멘트 바닥에 뱉었다. 사탕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지나가던 사람의 발에 밟혔다. 콰직 소리가 났다. 사탕을 밟은 사람은 발을 들어 신발 밑창을 확인했다. 신발이 더러워졌다며 투덜거리며 신발을 시멘트 바닥에 한 번 긁고는 지나갔다. 나는 가만히 모든 걸 지켜보았다.

어차피 교복도 들키고 얼굴도 들킨 거, 당당해지자는 생각에 집 들어가기 전 항상 네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질리지도 않냐는 듯한 얼굴을 하며 매번 다른 사탕을 손에 쥐어주었다. 습관처럼 입에 넣고 길바닥에다 뱉었다. 그사이 나는 너를 조금 알게 되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스무살이라는 것, 역사학과라는 것, 알바를 총 3개 한다는 것, 술담배를 싫어한다는 것, 단 걸 좋아한다는 것들을. 단 걸 꽤 많이 좋아하는 줄 알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 사탕까지 뒤져서 들고 다녔으니까.

 네게 물었다.

 “왜 계속 사탕 줘요?”

 “단 거 맛있잖아.”

 너도 내가 익숙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반말을 했다.

 “근데 왜 맨날 맛을 바꿔요? 같은 날이 없어 무슨.”

 “단 거 다양하게 먹으면 좋잖아.”

 그러곤 내게 흑사탕을 내밀었다.

 “예전엔 취향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아저씨 같아요.”

 사탕을 입에 넣고 굴렸다. 다른 사탕과 달리 농도가 짙었다. 너 같은 맛이었다. 농도가 짙고 달고 무거운 맛. 이 사탕은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뱉지 않고 오물거렸다.

 “왜 안 뱉어?”

 내 범죄가 들켰다. 나만 알고 있던 은밀한 범죄가 들켰다. 심장이 돌연히 빠르게 뛰었다.

 “왜요?”

 너는 말 대신 담배도, 사탕도 아닌 읽고 있던 책을 건냈다. 책에는 오키나와의 역사가 적혀있었다. 버려지고 착취당하고 점령당한 오키나와. 그리고 흑사탕.

 “이 사탕이 취향일 줄이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다 알고 있으니까.

 “현실을 찾는 감각이 좋나 봐요.”

 너는 주머니에서 흑사탕 하나를 더 꺼내더니 입에 넣었다. 이빨로 사탕을 와드득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사탕을 순식간에 깨어먹으며 내 손에 보헴시가 미니를 쥐어주었다. 나는 담배를 뜯지 않고 계산대 위에 떨어뜨렸다. 대신 오물거리던 사탕을 너처럼 깨물어 보았다.

 나는 지금도 흑사탕을 이빨로 깨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