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은 현우와 마주 앉아 호주산 스테이크를 썰다가 문득 말했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수빈은 내내 한국이 지겹다고 생각해왔다. 더 늦기 전에 호주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래, 여유 좀 생기면 가보자. 현우는 수빈을 힐긋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수빈이 뜬금없는 소리를 할 때마다 익숙하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호주만 가려는 게 아니야.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

 현우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기를 씹을 뿐이었다.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현우는 떠돌이 생활을 하고 싶은 거냐며 비꼬듯 대답했었다. 수빈도 구태여 덧붙이지 않고 와인을 벌컥 들이켰다. 그치, 넌 나를 생각 없는 애로만 취급하지. 대꾸할 가치도 없다 이거지.

 정적 속에서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현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수빈아,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다니던 회사는 어떻게 할 건데? 모아둔 돈도 없잖아. 그리고 우리 결혼은? 이제는 어른답게 행동할 때도 됐잖아. 곧 있으면 잔소리 폭격이 쏟아질 터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현우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치우고는 묵묵히 설거지를 했다. 수빈은 멍하니 앉아 애꿎은 와인잔의 표면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늘 너를 실망시키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렇게 시작된 침묵이 자그마치 일주일간 이어졌다. 매 끼니마다 2인 분량의 식사를 차리고 빨래를 개어주는 등 서로를 챙기는 와중에도 결코 말은 섞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수빈은 솔직히 미쳐버릴 것 같았다. 현우와 만나는 동안 잦은 다툼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화해를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수빈은 매일 밤마다 돌아누운 현우의 뒤통수를 보며 그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불완전한 인간 둘이 만나 서로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수빈은 실제로 현우를 만나며 완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우가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무너질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도 수빈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마음은 물주머니를 찬 듯이 무거운데 몸은 깃털같이 느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한 것이다. 수빈은 일주일간 현우가 헛되고 무의미하다며 일축해버리던 꿈들을 더 자주 상상하게 되었고, 그러자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몸이 조금씩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던 날, 수빈은 붕 떠올랐다. 아침에 눈을 뜨니 천장에 붙어 침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오싹해져 현우를 부르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공포감마저 이겨버린 듯했다. 수빈은 내려가기 위해 허공에서 발을 구르다가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방바닥에서 8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 자신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수빈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이상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무렵, 방문을 열고 들어온 현우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일주일 만에 듣는 현우의 목소리는 귀가 찢어질 듯이 크고 날카로웠다. 수빈은 그대로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다.

 현우는 수빈을 데리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올랐다니까요. 몇 분 정도라고 했지? 네, 10분 동안이나요. 현우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 그날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후로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의사는 못 미덥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아직도 불편하다거나,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수빈은 의사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경험이긴 했지만 그런 증상이 반복되지도 않을뿐더러 떨어질 때 부딪힌 오른쪽 엉덩이뼈 외에는 아픈 곳도 없었으니까. 괜찮다며 안심시켜보아도 변하지 않는 현우의 표정을 보며 수빈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솔직히 꽤 재밌었어. 나, 다시 한번 떠오르고 싶어.

 그 후로 수빈은 이상 현상의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나 현우와 작은 다툼이 있고 나면 다음날 수빈의 몸이 떠올랐다. 수빈은 어떤 물체에 의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공중에 떠있다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설렜다. 그렇게 날아오르고 나면 온몸에 생기가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현우는 그때마다 달려와 수빈을 방바닥에 안착시켰다. 두발이 바닥에 닿으면 편안했지만 그 익숙하던 감각은 점점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루는 수빈이 달려오는 현우를 막고는 양팔을 벌려 안으려고 했다. 나는 내가 나는 것도, 네가 날지 않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공중에서도 끌어안는 것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현우는 들리지 않는지 수빈의 손을 잡아끌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이런 장난은 그만두라고 애원하면서. 가볍게 당기기만 해도 쉽게 바닥으로 떨어지던 수빈의 몸이 그날은 조금 달랐다. 현우가 수빈의 팔목을 잡고 매달리듯 당겨도 꿈쩍하지 않았다. 수빈은 아팠다. 팔이 빠질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플 바에는 차라리 그냥 공중에 떠있는 채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수빈은 몸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빠르게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자 정말 순식간에 현우에게서 멀어졌다.

수빈은 공중에 뜬 채로 현우에게 이별을 고했다. 영화에서처럼 쿨한 이별은 하지 못했다.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수빈은 머리를 천장에 쿵쿵 찧으며 방문으로 다가갔고 그때마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방바닥으로 방울져 떨어졌다. 문 손잡이에는 손이 닿지 않아 발로 눌러서 열어야 했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수빈은 바닥으로 착지했다. 콩. 이번엔 엉덩방아도 찧지 않았고, 조금도 휘청거리지 않았다. 건물 복도에 낮고도 깨끗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손님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잠시 후 이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그건 수빈의 제대로 된 첫 비행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붕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아주 익숙한 감각을 느꼈고, 이내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