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호《1/2》: 콤플렉스

26편째 풋소설

2024. 6. 16.

🍏 6월호《1/2》: 콤플렉스

26회 (2024.06.17)

6월호 주제 《1/2》

콤플렉스

허운

“나 요즘 좀 이상하다?”
“뭐가?”
지원과 서연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며 일제히 정현을 바라봤다.
“요즘 뭐든 절반까지 밖에 할 수가 없어. 밥도 반쯤 먹다가 말고, 영화나 드라마도 반쯤 보다가 말고, 음악도 반쯤 들으면 휙휙 넘겨버리고.”
“그냥 입맛 없는 거 아니야?”
지원은 컵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에 싹싹 긁어모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 도파민 중독이라 그래. 쾌락의 역치가 올라가서 뭐 더 쎈 거 없나 하고 넘기는 거라고. 요즘 다들 그래. 걱정 마.”
서연은 차분히 웃으며 말하고는 물티슈를 꺼내 끈적해진 손이며 테이블을 닦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
정현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 지난번에 운전해서 부산 가다가 상주쯤에서 차 퍼졌던 거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나지. 그때 니가 너무 울길래 내가 그 밤에 그 멀리까지 데리러 갔잖냐. 그다음 날 나 인턴 최종면접이었는데, 진짜 이런 친구가 어딨어.”
지원이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부터 뭔가 이상했어. 잠도 매일 서너 시간 밖에 못 자고, 회사에 가도 오후 두세 시만 되면 집에 오고 싶어서 미치겠고.”
지원과 서연은 ‘무슨 저런 당연한 소리를 유별나게 할까-’라는 표정으로 정현을 바라봤다.
“아니 너희가 심각성을 몰라서 그래 지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 지난번에 외부 미팅이 있었는데, 그날도 미팅 장소 앞까지 갔다가 그냥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어. 한 시간이나!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돼서 회사에 설명하느라 얼마나 진땀 뺐는데. 지난주에 토익 보러 가서도 문제를 반밖에 못 풀고, 건강검진도 받다가 중간에 급한 일 생겼다고 둘러대고 집에 왔어. 그냥 요즘 다 너무 이상하고 무서워.”
다 녹아 컵의 절반께에 찰랑거리는 아이스크림 국물 위로 정현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런 건데? 어떤 느낌이야? 그냥 몸이 굳어?”
갑자기 심각해진 표정의 지원이 정현에게 물었다. 서연은 휴지를 몇 장 뽑아 정현에게 쥐여주었다.
“그냥 몸이랑 마음이 다 멈춰. 그 순간에 한 끗이라도 더 움직이면 정말 죽을 거 같아.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무슨 저주에 걸린 것처럼... 매번 누가 목을 조른 채로 폐를 진공 압축하는 거 같아. 의지의 문제인가 싶어서, 진짜 굳게 마음먹고 움직이려고 하면 그 순간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눈앞이 까매져.”
“찾아보니까 상주면 정확히 부산이랑 서울 중간이네... 그날 별다른 일은 없었어?”
한참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서연이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딱히 없었는데... 그날 거기서 뭐가 씌었나? 정말 점이라도 보러 가야 할까 봐.”
“너는 교회 다니는 애가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쪽엔 영 젬병이야. 원래 정석대로 가려면 존나 돌아가는 거 알지? 천국 쪽 사정도 이해는 하는데 내 생은 너무 짧으니까 나는 마음이 급하다고 지금. 죽을 때까지 이러고 살면 어떡해.”
“그래 아무래도 한국만큼 빨리빨리는 아닐 거니까... 로컬만의 전문성이 있지. 너네 주님도 이해하실 거다.”
서연의 맞장구를 끝으로 다시 한번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우리가 당장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네.”
“아니면 진짜 점 볼래? 내가 엄마 다니는 곳 물어볼까?”
지원과 서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현을 바라봤다.
“아냐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냥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해서. 퇴사하고 좀 쉴까 봐. 어차피 이직 준비하려고 했으니까, 거기에 집중도 할 겸.”
“그래 맞아 너 그동안 너무 고생하긴 했어. 뭐 일주일이라도 제대로 쉰 적이나 있냐? 고장 날 만도 하다 야.”
“그래 퇴사하고 좀 쉬어! 금방 괜찮아질 거야. 너 마음 편한 게 제일 중요해. 알지?”
서연이 정현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알겠어 얘들아 고마워... 근데 진짜 미안한데,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같이 저녁은 못 먹을 거 같아.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다가 가. 나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황한 지원과 서연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정현은 이미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나서고 있었다.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어 드러난 정현의 맨살 위로 한낮의 햇빛이 쏟아졌다. 그는 한참 동안 땡볕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지원과 서연은 차마 그를 다시 데려오지 못했다. 다만 지원은 생각했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6월의 열기에 정현이 천천히 잡아먹히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서연은 발견했다. 정현이 절반 정도 희미해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