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그 남자의 뺨에는 꽃이 피었다고 했다. 콧등 옆에서 연보라색 꽃잎이 옅은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데, 그게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졌을 때 그는 나를 만났다. 처음 그가 꽃을 꺾어 내게 건넸을 때, 텅 빈 그의 뺨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받았구나. 너무 단순해서 도리어 그 몫을 헤아릴 수 없는 형태의 마음을.

  내가 물을 주어 꽃을 되살리는 것과 그가 망설임 없이 꺾어다 준 꽃은 사랑의 몫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사랑을 염원했지만 겁이 많았다. 입에 담는 순간 마음의 규모라는 것이 주체할 수 없이 커지거나 작아질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어리석었고, 사랑의 균형이 뭉개지는 상상을 하며 밤을 새는 날엔 눈물을 많이 흘리곤 했다.

  “있잖아. 나한테 더는 꽃을 안 주고 싶어지면 어떡할 거야?”

  내가 간밤에 부은 눈으로 그렇게 묻자 그 남자는 잠시, 아주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너를 사랑해, 라고 말했던 때. 처음으로 사랑을 입에 담았던 때,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사랑이라고, 유치하지만 사랑을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내게 괜찮다고 했다. 얄따란 꽃잎도 언제든 되살아나 뺨을 연보라색으로 물들이듯,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그러면 나는, 나도 사랑해, 라고 했다.

  그와의 시간이 촘촘하게 흘러가는 동안 나는 문득 어림법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사랑이 정확히 절반의 비중이기를 바라면서 몫을 따지는 일엔 원망과 후회가 뒤따르곤 하는데, 나는 그 남자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껏 단순해졌다. 그에게 결점을 들킨 날엔 크게 아파했고 사랑이 과분하게 느껴질 땐 감사해했으며 완벽할 땐 마음껏 완벽했다. 그러자 사랑해라는 말에는 힘이 생겼다. 사랑은, 꽃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발생했다.

*

  그 남자는 이제 내게 꽃을 주지 않는다.

  헤어지던 순간에도 나는 그의 몫을 헤아릴 수 없었다. 누구의 몫이 영에 수렴해가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우리는 이별하면서 서로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단순한 세상을 신뢰하기로 했고 그는 꽃을 계속해서 되살리기로 약속했다. 그게 우리의 새로운 어림법이었다. 어딘가에 또 사랑이 탄생하고야 말겠지, 나는 금세 행복해질 거고, 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짐작하는 간절한 어림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