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토요일까지 일했다. 아빠는 금요일까지 일했다. 노는 토요일이 있을 때부터, 그게 없어진 이후까지도 토요일의 주인은 아빠였다.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꽤 가정적인 편이라며 자랑했다. 청양고추를 못 먹는 나를 위해 작은 프라이팬에 내 분량의 스팸 볶음밥을 해주고, 자신은 밥을 따로 차려 먹었다. 늘 막대 걸레로 바닥을 열심히 닦았고, 이불을 털어 널었다. 나의 키가 클수록 배만 점점 불러오는 남자가 주방에 서 있는 건 눈에 익숙한 이미지였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어깨가 으쓱했다.

  일요일의 주인은 부모였다. 엄마는 자신의 쉬는 날을 가만히 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성장의 여지가 팔다리의 길이밖에 없었을 때의 나는 거실에 가만히 누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서점에 가서 눈에 별빛을 박아 넣은 예쁜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책을 하나씩 사 오면 그걸 따라 그렸다. 나는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어버리는 아이였고 엄마는 내가 그 책을 일주일간 붙잡고 있길 바랐다. 그래서 아주 재미없는 전집을 얻어오기도 했고, 학원을 무수히 많이 보내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것들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토요일의 주인은 자신이 할 일이 끝나면 거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아주 재미없고 폭력적인 영화를 봤다. 늘 주먹과 날붙이가 날아다녔고 피와 앓는 소리가 거실을 흩트려놓았다. 산뜻하고 깨끗해진 거실을 꼭 그렇게 망쳐놓았다. 나는 해가 들어오는 따스한 거실이 망가지는 것을 피해 도망쳤다. 그저 벽 하나를 사이에 끼고 있는 나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임에도 나는 아빠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와 같은 일을 해야 했다.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했다. 매일 같은 게임을 했다. 왕자님을 그네에 태워서 공주님이 사는 탑까지 들여보내 주는 게임이었다.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감각과 각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해졌음에도 여전히 나는 왕자님을 공주님에게 데려다줬다. 공주가 있던 탑 꼭대기에서는 항상 빨간색 하트가 뿅뿅 튀어나왔다. 한집에 사는 부녀는 네모난 모니터 안에서 빨간색 무언가를 보기 위해 집중했다.

***

  최면 선생님은 내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을 캐물었다. 선생님, 혹시 최면할 때 이 사람 통장 비밀번호 알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으세요? 하하, 있어도 다원 씨한테는 묻지 않을게요. 아니에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선생님께 최면 치료 받을 돈뿐이에요.

  선생님은 아주 유능하진 않았지만 나름 상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말더듬이거나 머리를 뜯어 탈모가 오거나 공황발작이 종종 오는 사람들이었다. 선생님은 최면 치료가 심리 치료계 안에서 한의학 정도의 위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의학의 기술력으로 마법 같은 약을 지어주면 자기가 잠시나마 근육의 움직임이 편해질 수 있도록 침을 놔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펀치에 맞은 듯 잠들어버리거나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기묘하고 두려운 약을 지어 먹을 정도의 자본은 없었기에 온몸에 침을 꽂아 무의식으로 빠져야 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직업에 꽤 자부심이 있었다. 대중들에겐 사이비거나 사짜 정도의 이미지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마술사 같은 미소를 가진 선생님은 그 신비스러움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원 씨, 최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함이에요.

  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편안한 소파에 누우면 선생님은 저 말을 했다. 원래는 '다원 씨, 최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함이에요. 집에서 잠들 때처럼 편하게 누워보세요.'까지가 대사였지만, 내가 '집에서 편하게 잠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요.'라고 말하자 다소 간소화되었다.

  "저는 이성 관계가 뭔지도 모르는데, 아빠 몰래 본 로맨스 만화에 두 주인공이 한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니까 가슴이 두근대요. 주인공들도 서로 등을 돌리고 가슴이 뛰는 소리만 듣고 있는데도요."

  "성이 뭔지 배우기 전부터 사람은 무언가를 알고 있죠.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걸 보고 인터넷에 '야한 만화'라고 검색해서 더 찾아봤어요. 근데 어떻게 보는지 몰라서 미리보기만 볼 수 있어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요. 어라, 제가 '야하다'는 말의 뜻을 어떻게 알았죠?"

  "그걸 보고 있을 때의 상황을 더 자세히 말해줄래요?"

  "아빠가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저는 인터넷 창을 아주 작게 만들어서 모든 미리보기를 보고 있어요. 네이버에 야한 만화 추천이라고 누가 올린 글만 볼 수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검색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뿐이에요. 아빠가 들어오기 전에 어서 전체를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엄청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요.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요. 이게 왜 보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너무 궁금해요. 근데 아빠가 들어왔어요. 도어락 소리가 들려서 바로 창을 닫았어요.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고 해요. 아빠가 방 안으로 들어올 거예요. 제 손이 너무 느려서 게임을 하고 있던 창을 열지 못했어요. 그냥 바탕화면만 보고 있어요, 저는. 아빠가 비비빅 두 개랑 와일드바디, 쌍쌍바랑 더위 사냥을 사 왔어요. 비비빅은 아빠 거고 와일드바디는 엄마 거예요. 저는 늘 쌍쌍바랑 더위 사냥만 먹었거든요."

  "이 상황이 왜 다원 씨에게 기억에 남을까요?"

  "저는 쌍쌍바와 더위 사냥만 먹었어요. 여름이 되면 아빠는 항상 그 두 개를 사 왔죠. 제가 그거 아니면 안 먹었었으니까요. 근데 저는 항상 그걸 혼자 다 먹어야 했어요. 한쪽만 먹고 싶더라도 전부 먹어야 했어요. 더위 사냥은 반을 갈라 냉동실에 넣어놓기도 했는데 쌍쌍바는 그러기 좀 애매했어요. 나누어 먹을 사람이 없어요. 아빠는 비비빅을 이미 먹고 있고, 엄마는 일을 하러 가고요, 친구들은 만날 수 없죠. 저는 늘 게임만 했어요."

  최면 치료를 하고 나면 늘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을 걸어간다. 선생님의 상담실은 집에서 30분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몸에는 이미 빨간 점박이 같은 땀띠가 났다. 가는 길에 쌍쌍바 하나를 구매했다. 누구와 마지막으로 쌍쌍바의 반을 갈라본 것이 언제였더라. 늘 하던 것처럼 막대 두 개를 한 번에 들고 조금씩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다. 친구들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쪽이 망가진 이어폰을 오른쪽에만 끼우고 길을 걷는다. 그 애는 내 망가진 이어폰을 보고 자신의 에어팟 한쪽을 나누어줬다. 그 애는 내가 다른 남자와 술을 먹지 않기를 바랐다. 어떤 단어로 사이를 정의하고 싶어 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언어로 직접 들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에어팟을 나누어 낄 수 없었다.

  걔와 만났던 초여름의 밤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걔는 스크류바를 골랐고 나는 쌍쌍바를 골랐다. 내가 쌍쌍바를 집어들자 그 애는 나누어 먹지 않겠냐 물었다. 나는 걔가 내려놓은 스크류바를 다시 집어 손에 쥐어줬다.

  엄마는 항상 내게 혼자 있게 두어 미안하다고 했다. 월화수목금의 주인은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집에 나는 토요일의 주인처럼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 집을 지켰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아주 재미없는 전집을 얻어오기도 했고, 학원을 무수히 많이 보내기도 했지만 나는 어찌 되었든 아무도 없는 집을 들어가야 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했고, 여전히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기고, 여전히 누군가가 불편하다.

  그 애는 참 거대하고 훤칠했다. 인기도 많았다. 그리고 솔직했다. 걔의 웃음에는 거짓도 없었고 눈에 지긋지긋함도 없었다. 나는 걔가 허물없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걔의 싫은 점을 끝없이 찾았고,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무한히 생각했다.

  내가 걔에게 어떤 것도 나누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걔는 나보다도 빨리 알았을 것이다. 그게 혹여 아주 별거 아닌 쌍쌍바더라도. 나는 걔에게 어떤 것도 받지 않으리라는 것도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그것이 에어팟이 아니라 혹시 잘 맞을 수 있는 음악적 취향이거나, 식성이거나, 일치할 수 있는 정보들이라는 것도 알았을까.

  나는 쌍쌍바를 아주 불편하게 먹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두 개의 막대를 떨어지지 못하게 위에서부터 야금야금 베어 문다. 이제 다시 먹을 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기어코 분리되고야 마는 막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