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가 되면 해린은 침대에서 일어난다. 옆에서 자고 있는 준이 깨지 않게 조심히 이불을 걷고 바닥에 발을 내딛는다. 하루가 또 시작된다.

*

 해린의 삶은 단순했다. 하루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가끔은 새벽에도 준을 보살피는게 해린의 임무였다. 해린은 아침에 일어나면 준과 자신을 위한 밥을 차렸다. 아침은 주로 죽이거나 미역국이었다. 크게 바뀌지 않는 메뉴가 해린을 편안하게 했다. 아침을 차리면 8시가 됐다. 준은 해린과 달리 잠에서 잘 깨지 않았다. 해린은 준이 조금만 뒤척거려도 깨버렸다. 하루 내내 지치지도 않는 준이 겨우 가만히 있는 밤에, 그 귀중한 시간에 해린은 편히 잠들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곤 했다. 비벼서 빨갛게 된 눈을 몇 번 깜빡이고 해린은 준을 깨웠다. 잠을 깨운 해린이 맘에 들지 않은 준은 소리를 한 번 크게 지르고 해린의 팔을 쳐냈다. 해린은 준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였고 준은 우는 소리를 내더니 해린을 힐끗 보고 일어났다.

 해린과 준은 손을 꼭 잡고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라고 부르기엔 점잖지 않은 시간이었다. 준은 손에 힘이 약해 숟가락을 매번 떨어뜨렸다. 숟가락만 떨어뜨리면 다행이지,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준은 짜증을 내며 식탁을 뒤엎기도 했다. 그걸 몇 번 겪은 해린은 아끼던 유리 그릇을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모두 바꾸었고 포크나 나이프를 절대 집에 두지 않았다. 준이 포크를 자기 발에 떨어뜨려 깊게 파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는 등 여러 사건 사고들이 있어 준이 난동을 부려도 다치지 않도록 모든 모서리에 찍힘 방지 고무를 붙이고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쫙 깔아놓았다. 해린은 죽을 다 흘리며 먹는 준의 얼굴을 닦고 숟가락을 들어 적당히 식은 죽을 입에 넣어주었다.

*

 밥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준의 입에 죽을 다 넣으면 아침밥 시간이 끝났다. 해린은 준에게 앉아있으라 하고 최대한 빠르게 설거지를 해치웠다. 준을 보살피며 느는 건 빠른 설거지 실력과 차곡차곡 쌓이기만 할 뿐인 애증이었다. 어느 땐 준이 눈앞에 있어도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사랑스러웠지만, 반대로 어느 땐 풍선처럼 부풀어버린 억울함과 귀찮음만이 있었다. 오늘의 해린은 준이 밉지만 애틋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뒤를 돌아 바닥에 앉아 손을 꼬물거리는 준에게 갔다. 준은 아직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었다. 해린은 그런 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준이 좋아하는 색칠놀이 책을 들고 와 자랑하듯이 준의 앞에서 나무를 색칠했다. 준은 해린이 채워가는 나무에 어느새 푹 빠져서 보고 있었다. 초록색 나무 기둥에 갈색 잎을 가진 나무였다. 준은 나무를 소중하게 문지르더니 주황색 색연필 하나를 들어 구름을 색칠했다. 아무 색이나 들고 구름을 칠한 거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래도 해린은 친절한 목소리로 준에게 물었다.

 “왜 구름을 주황색으로 칠했어요?”

 준은 눈을 책에서 떼지 않았다. 하늘을 노란색으로 색칠하면서 웅얼거렸다.

 “해린이 하늘이 주황 노랑일 때를 좋아해서.”

 해린은 종종 준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을 때면, 울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 말없이 준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준은 해린이 자기가 잘해서 손을 잡아준 줄 알고 신나서 계속 말했다.

 “여기 꽃은 보라색이다? 저번에 같이 나갔을 때, 해린이 나한테 보여줬잖아. 해린이랑 잘 어울려서 색칠했어. 잘했지.”

 준은 해린이 어릴 적부터 너는 제비꽃을 닮았다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 말했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린은 소리를 죽이며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물만 뚝뚝 흘렸다. 준은 신나서 말을 하다가 가만히 있는 해린을 눈치채 해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울고 있는 해린을 보고 준이 말했다.

 “왜 울어?”

 해린은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가 봐요.”

 준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내가 해린을 평생 지켜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