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에 풍경이 어딘가 울적해지고 가로수의 이파리들이 검게 흔들릴 때, 서른여섯의 김은혜는 어디로 향하던 중이었나, 그 밤의 도로를 따라 김은혜는 어디로 향했나. 김은혜의 인생은 실제로 어떠했나. 딸아이에게 실은 아빠에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이제부터는 엄마와만 둘이서 살게 될 거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는 뒤편에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던 그 서른여섯의 김은혜는 어떻게 살아가는 중이었나.

  이소희는 그것이 한여름 밤에 주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들의 일부에는 항상 좁은 방 안에서 끄덕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있었다. 기억이 난다. 굵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얼른 눈이 오기를 바랐던 것도, 하지만 그 밤에는 끝내 눈이 오지 않았던 것도. 이소희는 비보다는 흰 눈을 좋아했다. 열 살의 이소희는 좋아하는 게 많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늘 곁에 두고 싶어 했다.

  그 여름, 서른여섯 김은혜는 밤이면 집을 나갔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울려 퍼지면 이소희는 이불 속에서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방문을 열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커튼을 살짝 열어젖히면 창밖에는 스산한 어둠 아래로 나란히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열을 맞추고 늘어선 자동차 루프들은 얼음 틀에 차례대로 얼려진 얼음 같아 보였다. 이소희는 베란다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얼음 루프 아래로 몸을 숨기는 김은혜의 느린 몸짓을 살폈다. 머지않아 자동차가 낡은 아파트 입구를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까지도.

  이소희는 굳게 닫힌 현관문과 얼음 조각 하나가 빠져 엉성해진 주차장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덮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집에서 출발해 어디에 다다를 것이며, 어떤 마음으로 다시 집에 돌아오는가. 엄마의 밤 드라이브는 무엇을 위함인가. 혹시 이별을 위함일까. 엄마는 혼자가 되기를 원하나. 밤의 도로 위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홀가분함을 느끼려나. 아니면 혹시, 차가운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부슬비 같은 눈물을 흘리려나. 이소희는 왜인지 모르지만 밤 드라이브를 하며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이소희는 아빠가 어느 날부턴가 사라진 이후로, 이제 자기에게 남은 것 중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내려고 애쓰며 종종 ‘혼자’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것, 혼자 잠에 드는 것, 혼자 떠나는 것, 혼자 남는 것. 이소희는 혼자가 싫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이소희는 김은혜의 자동차 키를 훔치는 일을, 마음속에서만 다짐하던 그 일을 실제로 저지르고 말았다.

  그날 밤 김은혜는 집을 나서려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자동차 키가 없어진 것을 보고 조용히 제 방으로 복귀했다. 한편 이소희는 이불 속에서 자동차 키를 손에 꼭 쥔 채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오늘 엄마는 밤의 도로를 향해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심해 봐도 이소희는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린 이소희는 엄마가 불쌍했다.

  이소희는 그날 밤 김은혜의 뒤척이는 소리가 가시처럼 제 귀를 찌르는 것을 느끼며 그럴수록 자동차 키를 더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시간이 흐르자 아득히 밤잠에 들었다.

*

  그 밤의 도로를 따라 김은혜는 어디로 향했나. 어떻게 살아가는 중이었나. 김은혜는 사라진 자동차 키의 행방을 눈치 챘던가. 혼자 두지 말라는 딸의 치기 어린 투정을 알아챘을까. 그날, 마음이 많이 무너졌을까.

  서른하나가 된 이소희는 제 또래였던 서른여섯의 김은혜에 관한 무수한 질문들을 습관처럼 떠올린다. 자기 인생의 좌표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겠고, 삶을 그런대로 유지하는 일이 힘겨울 때마다 더욱 절실해지는 질문들. 그 미결된 물음 끝엔, 이소희가 상상했던 그 밤의 도로 위 김은혜의 숨죽인 울음과 침묵하던 밤공기가,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 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이소희의 마음속에 무한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소희의 축적된 기억 위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삶의 고단함에, 모든 일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