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신경을 썼다. 내가 아름답거나 유혹적인 미소를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몹시 불쾌해하거나 입을 한쪽으로 올리며 웃었다. 나는 처음 보는 남자의 가랑이와 배꼽 사이에 박힌 벨트 문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의 고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배에 거대하게 달고 온 브랜드 문양은 언제나 재수가 없다. 마치 벨트를 풀며 마법 주문이라도 외칠 것처럼 거추장스럽고 우습다. 자신의 중심이 어딘지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옷차림을 한 애들과 눈이 마주치면 주저 없이 자리를 떴다.

  옷차림이 보여주는 당신의 성격은 꽤 한정적이면서도 명확하다. 겨우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적어도 마법 소녀의 변신 벨트보다 큰 브랜드 로고 벨트를 차고 있는 남자와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될 거라는확신은 있다. 나의 옷은 주름지고 많은 오염이 있다. 돈을 주고 처음 구매할 때부터 그랬다. 몸에 딱 맞기 힘들고 여러 때가 묻어있다. 그 상태로 다림질된 정장 바지를 비웃어보자. 단지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닌 그들이 기울어진 세상에 살게끔 만드는 방법은 이리도 쉽다. 혼자 비아냥대며 중얼거리면 된다. 대신 비참해지는 방법과 매우 유사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태원에 발을 딛기 전에 각오를 하나 한다. 독하고 달콤한 담배를 새로 구매한 후 두개비를 내리 피운다.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에 가래침을 뱉은 후 오늘도 좆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한다. 이 동네는 벌거벗은 사람, 차려입은 사람, 술에 젖은 사람, 코피를 흘리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사람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넘쳐나기에 매번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 안에서 가장 버거운 것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다.

  불행한 소녀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잔스포츠 백팩을 들어야 한다. 색상은 상관없다. 튀는 색상이어도 좋고 무난한 검은색이어도 좋다. 부모를 잃고 외로움에 버둥대지만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는 드라마 속 김고은처럼 보이면 된다. 짐은 무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혹시 당신의 원나잇 버릇이 자해하기이기 때문에 칼을 챙겨야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복장은 상관없다. 레이스와 유치한 리본이 달린 섹시 승부 브라자만 입어도 된다. 그래, 많이 양보해서 구찌 벨트와 깔끔한 셔츠를 입어도 괜찮다. 타투가 많아도 좋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피어싱을 뚫어 귀가 너덜너덜해도 괜찮다. 일본의 로리타 드레스를 입어도 좋고, 삭발을 한 자는 무조건 환영이다. 그저 잔스포츠 백팩을 메고 이태원의 클럽 거리를 어슬렁거리면 된다.

  <잔스포츠 클럽>은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접선한다. 가방을 들고 춤을 추고 있으면 서로에게 다가간다. 한 클럽에서 회원을 한 명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하루에 몇 명을 만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절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선 만나지 않는다. 그것이 일원칙이다. 언제나 크고 시끄러운 스피커 아래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목소리를 과하게 내는 사람이 이 클럽의 존재를 알 리 없기에 걱정은 없다.

  하는 일이라곤 마주하기 뿐이다. 서로를 마주 보며 춤을 추면 된다. 가방을 메고 리듬을 타는 사람들이 모이면 클럽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이토록 듣기 힘든 음악을 견디던 사람들은 이제 유머와 조롱으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왔다. 죽어도 춤추고 싶지 않은 박자 안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하며 몸을 흔든다. 이성의 얼굴을 살피며 눈치 게임 마냥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우린 블랙 코미디 프로그램의 배우가 된다. 나의 행동들은 전부 조롱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섞일 수 없는 것에서 섞이지 않는 것이 되는 일을 경험한다.

  잔스포츠 클럽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잔스포츠 가방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아주 은밀한 소수의 권위자가 되는 것이다. 배제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배척할 수 있다.

  만일 서로를 마주했음에도 이 끔찍한 음악과 그 음악을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지긋지긋하다면. 가방에서유일한 준비물 하나를 꺼내어라. 일루미나티의 삼각형처럼, 우리의 상징이 되는 무겁고 아날로그적 삼각형을 꺼내어라.

***

  잔스포츠 클럽은 벌써 3년이나 된, 나름 굳건한 모임이다. 여전히 내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현저히 적다고느껴질 때, 어쩌면 전혀 없다고 느낄 때마다 잔스포츠 가방을 멘다. 3년 전 처음 나에게 클럽의 존재를 알려준 그 아이는 이제 이태원에 잘 오지 않는다. 6개월에 한 번 만나면 다행인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걔의 가방을보기 위해 이 지저분한 거리를 거북이처럼 걸어 다닌다.

  그 아이는 같은 클럽에서 나와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신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걔는 몸에 가시가 난 선인장처럼 사람을 마구 피하고 있었다. 걔도 나도 왜 섞이지도 못할 곳에 가서 고통스러워하고있었는지는 모른다. 가끔 그런 곳에 가서 호되게 당하고 싶은 충동이 종종 올라올 뿐이다. 그때는 서로의 등에 등껍질같던 가방은 없었다. 그저 서로, 저 애도 이 곳이 힘들구나, 즐겁지 않구나, 고통스럽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때 공간을 전복시킬 수 있는 상징과 방법이 없었으니까. 공간을 오로지 버티고 있어야 했다. 나보다도 힘겨워보이는 쟤를 보며 안도하기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애와 눈을 마주하며 버젓이 서있다가 말을 걸어볼까 생각했다. 그냥 평소 하던 것처럼 외국인들밖에 없는 기묘한 바에 가서 덤탱이를 씌운 술을 먹을까 생각했다. 그때 그 애가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접촉하지 않기 위에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며 사라졌다. 무언가 불현듯 떠오른 사람처럼, 혹은 저혈당 환자가 사탕을 찾는 걸음처럼.

  그 아이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화장실과 클럽 스테이지 사이 복도에 놓여진 물품보관함 구석에 작은몸의 그 애가 앉아있었다. 가장 오른쪽 맨 아래 칸에 쭈그려 앉은 걔는 물품 보관함에서 잔스포츠 백팩을 꺼냈다. 그 아이의 잔스포츠는 헤지고 낡은 파란색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징이다. 그때도 뭘 그리 챙겨왔는지 빵빵하게 차 있었다. 걔는 거기서 피아노 학원에서나 사용할 법한 메트로놈 하나를 꺼냈다. 그걸 어느 정도 조절하더니 똑딱대는 추를 귀 가까이 가져다 댔다. 걔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시끄러운 그곳에서 자기의 박자를 들었다. 나는 멍하니 걔만 바라봤다. 묘하게 밝은 조명 아래에서 본 걔는 까맣고 작은 안경을 끼고 촌스러운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주말이었으면 입장도 못 했을 게 뻔했다. 더벅거리는 곱슬머리가 메트로놈이 소리를 낼 때마다 함께 움직였다. 나는 여전히 나무나 허수아비로 설명될 정도로 단단하게 서 있었고, 걔는 메트로놈을 산소호흡기처럼 사용했다.

  걔는 선인장 같은 몸에서 비로소 사람처럼 유연해지고 있었다. 가끔은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를 보고 웃기도 했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다 메트로놈을 다시 그 빵빵하고 낡은 잔스포츠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작은 몸은 급하지도 않았다. 지퍼를 여는 모양도, 한숨 쉬며 안경을 올리는 모습도 참 느리고 어색했다. 걔의 팔에 보이는 클럽 도장이 이질적이었다. 내 손등 위에 야광 도장도 저렇게 못생겨 보일까 손을 마구 비볐다.

  걔는 그렇게 클럽을 떠났다. 파란 잔스포츠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섰다. 그게 잔스포츠 클럽의 시초인지, 혹은 걔가 내게 기존의 클럽을 알게 해준 것인지는 모른다. 그 이후로 처음 이태원의 잔스포츠 가방들이 클럽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느린 발걸음으로 클럽을 떠날때 해준 말은 비공식적인 공식 초대장이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초대장을 건네는 사람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마 어쩔 수 없이 큰 백팩을 이태원에 챙겨들고 오게 될 것이다. 나의 등엔 여전히 메트로놈과 오래된 잔스포츠 가방이 달려있고, 새로 산 담배와 어디선가 얻게 된 공짜 라이터가 있다.

  클럽 안에서도 공허한 눈을 하고 몸을 뻣뻣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인식한 사람들에게 말해주자.

  “다음엔 가방 들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