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지만 하나는 이불 속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 딱히 움직여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멈추었다는 건 죽었다는 걸까. 하나는 약이 다해 멈춰버린 시계를 가만히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수명이 다한 시계 아래로는 비슷한 처지의 알전구가 무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더듬어 바늘과 실 뭉텅이를 끌어왔다. 지난해 봄 무렵부터 뜨기 시작한 목도리다. 처음엔 하루에 한 코씩 떠서 완성되면 칩거 생활을 끝내려고 했지만, 목에 걸칠 수 있는 정도가 된 이후부터는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뜨개질을 반복했고 어느덧 방 한편을 다 차지할 정도로 길어졌다.

 푸우-하

 이불 안쪽의 공기가 답답할 만큼 따뜻해지자 하나는 고개를 내밀면서 크게 숨을 뱉었다. 시원한 공기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될 때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과 같은 계절의 변화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나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그건 그녀가 정지해 있는 것과 별개로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또다시 겨울이 오면 그때는 정말 나가야 하는데.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하나의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나에게 세상은 우주 같았다. 신비로움과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런 우주 말고, 너무 복잡하고 거대해서 숨이 턱 막히는 우주였다. 매일이 외딴 행성에 떨어진 듯이 낯설었고 반짝이는 별은 평생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면 터져버릴 거라고. 그러니 안전한 우주선 안에서 조금만 더 잠을 자야겠다고…

 잠시 뒤 하나는 퍼뜩 눈을 떴다. 지하를 돌아다니다 더러운 물에 빠지는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맡았던 퀴퀴한 냄새보다 더 지독한 악취가 자신의 방에서 나고 있었다. 그녀는 갈아입을 속옷과 잠옷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몇 개월 만에 자신의 몰골을 본 하나는 처참함을 느꼈다. 입가는 주홍빛으로 물들어있고, 볼에는 버짐이 피어있고, 한껏 굽은 어깨에 머리는 산발이었다. 현실을 외면하기엔 화장실 조명이 너무 밝았다. 옷을 벗자 건조해진 날씨 탓에 일어난 각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나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로 자신의 몸을 닦아냈다. 타올로 묵은 때를 벅벅 벗겨냈고, 거품을 내서 몇 번이고 문질렀다. 닦을수록 더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아… 정말 싫다. 너무 싫어. 그녀는 피부가 빨개지도록 씻은 후 방으로 갔다. 몇몇 부위가 따가웠지만 그래도 아직 모자란 기분이었다. 방에는 빛이 들지 않았고, 모든 사물들은 널브러진 채 침묵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나와 닮은 것은 모두 사라져야 해. 하나는 멈춘 시계를 바닥에 내던지고 알 전구를 뜯어 발바닥으로 마구 밟았다. 그리곤 가위를 집어 들어 자신의 뜨갯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뱀 같기도 하고, 밧줄 같기도 하고. 더 이상 목도리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무언가.

 “이 방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

 가위질을 하려던 하나는 멈칫했다. 일순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명한 빛 아래 자신의 슬픈 눈을 마주했다. 상처를 받은 듯한 눈이었다. 그러나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눈 같기도 했다. 하나는 축축해지는 눈가를 마구 비볐다. 몸의 물기가 다 마른 후에도 한참 동안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울었다.

 울음이 가시자 하나는 발밑에 놓인 뜨개실을 움켜쥐었다. 그건 우주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고, 하나는 그 끈을 놓지 않았다. 단순한 실을 복잡한 모양으로 꼬아내며 그렇게라도 복잡한 세계에 닿아있고자 했다. 그녀는 기다란 뜨개 편물을 들더니 몸에 칭칭 감아내기 시작했다. 얼굴의 테두리부터 시작해서 입과 목, 팔과 몸통까지 빈 공간 없이 촘촘히 둘렀다. 그러자 그저 기다랗기만 하던 것이 모자인 동시에 마스크이자 목도리, 외투의 역할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곧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어딘가 어설프긴 했지만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든든했다. 하나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차지 않은 우주의 냄새가 났다.

 요즘의 하나는 계속해서 뜨개질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창문을 열어놓고 이불은 침대맡에 개어둔 채로. 중간중간 별처럼 작고 반짝이는 마음들을 엮어보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수수께끼를 두르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