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발단이었다. 체는 잠시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새하얀 눈밭과 어두운 숲을 헤쳐서 간신히 찾아낸 방법이라고 했다. 용왕을 살리기 위해 쏘다닌 왕궁 사신처럼 힘이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나도 알아.

  “이 방법을 쓰면 모든 걸 멈출 수 있어. 흘러가는 시간이나 몸속의 소화나 미세한 활동마저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허락 받는 방법이래.”

  모든 걸 멈추는 방법이라.

  난 그런 것 따윈 필요가 없었다. 멈추는 방법보다는 빠르게 나아가는 방법이 필요했다. 3점 슛을 쏘려면 키가 30센티미터는 더 커야 했고, 만화책을 빌리려면 열두 살은 더 많아야 했고, 루와 같은 반이 되려면 일곱 달은 더 기다려야 했기에.

  그리고 휘는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흐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체, 난 그런 건 필요 없어.”

  체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언덕에 앉아 양쪽 눈꺼풀을 내리깔곤 무릎에 붙은 빳빳한 풀을 골라내며 물었다. 체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웅웅 울리는 탓에 마치 바람이 말을 건넨 것만 같았다. 바람의 목소리는 의연하고도 슬펐다.

  “그럼 너는 멈추고 싶은 게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갈 멈춰서 좋을 게 없었다. 그리고 체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방법은 세상에 존재할 리 없었다. 내가 잘 구워진 계란프라이 조각을 집으려고 온갖 애를 쓸 때마다 휘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리곤 했으니까.

  “나도 너만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말인즉슨 휘도 나만 한 때를 겪었고, 그때의 휘가 자라는 걸 휘도 어찌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휘는 그때를 가끔 그리워하고 있다. 대충 내 식대로 해석해 보면 그렇다. 내가 대답이 없자 체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나는 멈추고 싶은 게 있어. 아주 간절하게.”

  체는 그 말을 하며 바람 속으로 찬찬히 왼팔을 뻗었는데 그때 바람이 미묘하게 세차게 바뀌었다. 체는 뻗은 왼손의 손가락 사이로 바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과 점점 멀어졌고, 손가락들은 하얗고도 검었다. 손가락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체의 얇은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던 엄마가. 저녁 시간까지 목욕 놀이를 해도 그만 나오라는 말 대신 카레 한 그릇과 주스 한 잔을 목욕탕으로 밀어 넣던 엄마가.

  엄마란 그런 건가.

  체가 사랑했던 엄마는 지금의 엄마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엄마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를 되돌리는 방법은 세상에 없어서 체가 할 수 있는 건 야위어가는 엄마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체는 얇은 입술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짙은 눈커풀이 이따금씩 반짝일 때마다 바람의 목소리가 들쭉날쭉했다. 이야기는 나지막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중간에 내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뒷부분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엄마라··· ···.

  나는 원래 엄마가 없어. 라고 말하려다 ‘원래’ 없는 게 맞는지 헷갈려서 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쯤 진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주방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짙은 카레 향이 부엌을 온통 뒤덮고 있을 거다. 오늘은 브로콜리가 들어간 카레를 저녁으로 먹는 토요일이니까. ’브로콜리가 들어간 카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동시에 휘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였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붙은 풀을 손으로 툭툭 털었다. 떨어져 나간 풀들이 바람에 날렸다.

  “나, 가야 해. 내일 학교에서 보자.”

  돌아서서 걷기 시작한 순간, 멈추고 싶은 게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체가 말한 것 같은 이유라면 나에게도 있었으니까. 체에게 대답해 주려고 돌아서는 순간 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휘에게로 향하며 머릿속으로 엄마를 되찾은 체를 그려봤다. 건강한 엄마와 마주한 체의 눈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체는 모든 걸 멈추어서 엄마를 되찾을 수 있을까? 체의 총망한 눈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

  익숙하고도 달큰한 냄새가 풍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