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얇고 동그란 안경, 동그란 얼굴, 투블럭 헤어컷, 나이키 운동화, 베이스 기타, 그리고 옅은 분홍색 맨투맨.

  너를 생각하면 이것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이것들을 다 모으면 네가 될 수 있겠다.

  그 날은 음악 수행평가 날이었다. 근 한 달간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기회였다. 적어도 음악 시간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결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책상에 가만히 엎드려 있어야 했다. 손을 포개고, 그 위에 머리를 올려 놓은 채로. 수행평가는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금새 손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빳빳한 교복 치마에 문질러 댔다. 처음 한두 번은 효과가 있는가 싶더니 그 이후로는 아무리 닦아도 닦이지 않았다. 축축해져가는 손에 난감해하기도 잠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 13번.”

  한 학생이 일어나 음악 선생님 앞에 놓인 의자로 걸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들려도 되는 소리였는데, 그 소리와 함께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같이 들렸다. 가장 먼저 수행평가를 마친 ‘공’ 씨 성을 가진 애가 요상한 의성어를 내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소리가 조용한 교실에 울려퍼지니 이상하게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웃음을 참지 못한 친구들이 ‘킥킥’ 대는 소리와 ‘풋’하고 작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애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하마터면 풋, 하고 웃음소리를 낼 뻔했다. 그때,

  탁탁.

  음악 선생님이 기다란 나무 막대기로 책상을 두어 번 쳤다. 그 소리에 웃음소리가 빠르게 거둬진다. 작년 여름, 계곡에서 본 물고기 떼가 떠올랐다. 삼촌이 커다란 돌 하나를 두 손으로 들어내자, 틈 사이에 있던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재빨리 사라졌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고기들이 한바탕 사라진 물속은 다시 고요해졌다. 작은 돌들만이 일렁거리며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아무런 소리도 없었던 것처럼.

  내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집중해서 멜로디를 외워보려고 눈을 감았다. 세 번째 마디의 음표가 머릿속을 막 지나갈 때쯤 다시금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으, 지겨워. 땀은 언제나 나를 괴롭게만 한다. 나의 시험지는 언제나 땀으로 우글우글해졌다. 그래서 서술형 답안지를 적을 때는 문제가 적힌 시험지를 손 아래에 덧대곤 했다. 그러면 그나마 나았다. 손에 검은 흑연이 잔뜩 묻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찰나, 어디선가 맑은 우쿨렐레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 소리. 하나도 틀리지 않는 박자. 나는 그렇게 깨끗하고 예쁜 우쿨렐레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리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끝나더라도 한 번만 더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팅팅’거리던 다른 애들의 우쿨렐레 소리와는 다른 그 애의 부드러운 우쿨렐레 소리는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책상에 닿아 있던 가슴께로 내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그 울림이 이 교실에서 제일 큰 것만 같았다. 그 소리가 ‘킥킥’, 혹은 ‘풋’ 하는 소리보다는 제발 크지 않길 바라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