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이 있잖아요. 풀려고 하면 더 지독하게 꼬이기만 하는 매듭이요. 내 인생에 오직 그런 것뿐일 때, 헝클어지고 방치된 실타래 속에 온몸이 산산조각 난 채 뒤엉킨 기분이에요. 그러면 삶의 곳곳에 자리한 매듭 사이로 내 분리된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식어버린 미열을 흘려보내요. 꼭 마지막 남은 생(生)의 기운이 이것뿐이라는 듯이, 가엾게.

 아, 물론 도움을 청해본 적도 있거든요. 내가 지금 진짜 고통스러운데 좀 도와줄래? 그런 질문으로요. 알아요. 제가 실수했어요. 그런 적나라하고 부담스러운 질문으로는 상대에게 짐을 떠안길 뿐이에요. 그보다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애정과 보호 욕구를 느낄 만큼 충분히 사랑스러운 질문이었어야 했는데. 이를테면, 저기 혹시 시간이 된다면 나를 좀 안아줄래? 같은 질문이요. 애석하게도 제가 그런 재주가 없어서요, 하하.

 요새는 내 답 없는 삶의 매듭을 너무 생생하게 느끼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다만 여전히 똑같아요. 꼬이고 뭉텅이 져버린 것들을 아무리 풀어내려고 해봐도 결국은 변함없이 나예요. 결국은 또 빌어먹을 나.

 그런 암담한 말을 하고는 습관처럼 살풋 웃는 그 사람에게서, 나는 오묘한 안도의 기운이 내 몸 안의 기다란 관을 따라 퍼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임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과 있으면 나는 다분히 건강한 사람이 된다. 남의 불행으로 얻는 자신감이라니, 간혹 스스로가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나는 이 모임에서 위로인지 우울인지 번잡인지 해방인지 모를 어떤 것을 얻어간다.

 처음으로 오픈 채팅방에서 ‘징징대는 방’을 발견했을 땐 어처구니없는 작명 센스에 가벼운 웃음이 났었다. 채팅방에 입장하고 첫인사를 나눌 당시에는 답답할 때마다 채팅방에 ‘아아아아아악 제 인생은 망했어요오오오옥’ 같은 맹목적인 외침을 무책임하게 던져놓기 위한 용도로 써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대면으로 모임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또 누군가 그래 만나서 제대로 한 번 징징대보자, 고 하자 또 누군가 오 좋은 생각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잠자코 자리에 앉아있는 때가 대부분이었만 퍽 성실하게 빼지 않고 모임에 참여해 왔다.

 서울은 넓고도 좁아서, 수평선이나 드넓은 들판의 끝을 향해 고함을 지르거나 오열을 터뜨릴 만한 공간이 부재하다. 무엇보다 서울엔 바다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서울에 바다와 수평선이 있었더라면 모든 서울 시민이 아주 조금씩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모임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엉엉 울거나 고함을 지르지도 않지만 대충 비스무리한 대화들로 고함, 오열 따위의 반사회적인 행위를 대신한다. 오늘 매듭, 생, 그리고 사랑스러움에 관해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그 사람도 분명 어떻게 보면 울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누구도 실제로는 울지 않았다. 그게 이 모임의 규칙이었다. 울지 않으면서 울기. 

 그런데 오늘 정말 울고 말았다. 매듭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가오는 성탄절을 기념해 카페 안의 벽 모서리마다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트리를 보다가. 트리에 걸린 예쁜 리본을 응시하며 결코 풀리지 않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생의 매듭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모두가 첫 울음을 터뜨린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게 의외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적당히 인정받을 만큼의 괴로움을 내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렸을 적 병원에 가기 싫어 건물이 떠나가라 통곡하던 때처럼 못생기게 울어버렸다. 바깥은 눈발이 흩날리고 트리는 예쁘게 반짝이는데, 내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엉엉.

*

 그날 밤 잠들기 전 매듭에 관해 암담한 말을 했던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밖을 나서기 전 문득 트리에 걸린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그 사람이 했던 말. 생각해 보니 리본은 한쪽을 잡아당기면 스르륵 풀려버리네요. 그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한순간 굉장히 어려 보였다. 분명 생이 버겁다느니 같은 이야기를 할 때는 나이를 초월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스르륵 손쉽게 풀리는 리본의 허술함에 대해 생각하며 이상한 안도감에 빠졌다. 성탄절이 지나고 나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디쯤 있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나의 생을 대접하는 방법이란 대체 무엇인지. 리본의 모양새를 닮은 순간만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살아가도 괜찮을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