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의 생일이다. 크리스의 이름이 크리스인 이유는 간단하다. 크리스의 신실한 부모님께서 크리스마스 때 아이가 태어났다고 기쁜 마음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크리스로 지으셨다. 마스까지 붙이기엔 이름이 너무 길다고 마스는 지워버리셨다. 참고로 크리스는 한국인이다. 크리스는12월 25일이 올 때마다  자신의 생일보다 크리스마스에 의미를 두는 집 분위기가 싫어서 마음 속으로 ‘오늘은 크리스 데이야.’라고 크게 외쳤다. 생일의 서운함이  부모님에 대한 반감으로 변화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크리스는 아주 건실한 무교인으로 자라났다. 12월 25일이 되면 모든 지인들에게 ‘Happy Chris Day’라고 보낼 만큼. 오늘은 그런 크리스의 24번째 생일이다.

 한 달 전 토요일에 크리스와 안은 거실 소파에 앉아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30분쯤 지나자 갑자기 화면이 뉴스로 바뀌면서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

 "오늘 오후 14시 46분, 대통령은 전시 상황임을 밝히고 비상 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평범하디 평범한 오후에 나라가 한순간에 뒤집혔다. 다른 속보를 보니 국회 앞에 계엄군이 들어차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고 맞서는 국민을 저지하는 모습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하필 주말이라 서울에 없는 의원들이 많아 당장 계엄령을 저지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국회로 모여드는 시민들과 의원들, 그걸 막는 계엄군들의 행렬이 뉴스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때, 모두의 이목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탕-.

 멀리서 나는 소리였지만, 단숨에 총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이어 시민들의 절규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여기 사람 살려! 피가, 피가!’ 한 시민이 복부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옆에 있는 시민들은 혼란에 빠져 고함을 질렀다. 계엄군은 한 번 주춤하더니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위로 발포하며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국회는 의원 정족수를 맞추지 못해 계엄 선포 당일에 계엄군에게 점령당했고 여의도를 비롯한 서울 전역, 나아가 전국으로 군인들이 거리를 매웠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무너진 시간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계엄에 맞서 시위를 나갔다. ‘대통령은 퇴진하라! 계엄을 해제하라!’ 두 문장이 거리에 자리잡았고 총소리가 그 문장들을 비웃듯이 울려퍼졌다. 두 문장을 굳히는 데에는 크리스의 목소리도 있었다. 안은 시위에 나가는 크리스를 말리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안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꼭 우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시위에 나가는 크리스의 주머니에 핫팩과 붕대를 챙겨주는 정도였다. 안은 크리스가 집 문을 나설 때마다 두려워 크리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같이 나서지 못하는 부끄러움보다 우리가 아니어도 되는데 나서는 크리스를 향한 미움이 컸다. 크리스는 나갈 때마다 매번 ‘안, 나 갔다올게.’라는 말을 했고 밤 늦게 다치고 돌아와도 집에 들어서면 꼭 ‘안, 나 다녀왔어.’라는 인사를 했다. 크리스의 인사에 맞춰 집 문 방울이 딸랑딸랑 울렸다.

 시민들의 노력이 빛을 보는 시간이 도달한 날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반계엄 군인 및 시민과 손을 잡아 국회를 둘러싸고 정족수를 채워 계엄 해제를 요구한 날이었다. 국회를 지킨 시민 중에는 크리스도 있었다. 그날은 크리스의 생일 하루 전날이었고 안과 크리스는 일주일 전부터 크게 다툰 상태였다.

 "왜 네가 거길 가야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잖아. 너 충분히 시위 해왔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나서는 거야."

 "안. 나는 내 나라가 편안하지 않은 게 싫어. 나는 내 나라에서 마음 놓고 산책하고 싶을 뿐이야. 그걸 위해 나는 내 권리를 표현하는 것 뿐이고. 날 이해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말리지는 마."

 결국 안은 크리스를 말리지 못했다.

 12월 24일, 국회 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위한 투표를 하는 동안 안팎으로는 정신없는 사투가 이뤄지고 있었다. 시민을 사살해도 된다는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계엄군은 총을 쐈다. 봉에 맞아 뼈가 부러지는 시민들도,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시민들도, 그걸 보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멈추지 않고 계엄군을 막아냈다.

 오후 16시 03분, 시민들은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맞이했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계엄군은 빠르게 철수했고 다친 시민들을 위해 구급차가 순식간에 도착했다. 안은 크리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 띠링. 안은 ‘크리스! 괜찮아? 안다쳤어?’라고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그러나 들려온 목소리는 크리스가 아니었다. ‘크리스님 보호자 되시나요? 지금 이 분이 총에 맞아서 구급차로 이송되는 중인데, 제가 옆에 있어서 그냥 따라왔습니다. 지금 한성병원으로 가고 있어서 한성병원 응급실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안은 시야가 깜깜해졌다. 어떻게 챙겨서 응급실로 갔는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안이 응급실에 도착하자 흰 천에 얼굴이 가려진 크리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음조차 나지 않았다. 나가기 전, 내일 크리스 데이에 같이 산책하자던 크리스의 눈치 보던 한 마디가 귀에 맴돌았다. 더이상 크리스의 목소리에 맞춰 울리지 않을 방울 소리를 생각했다.

 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오늘은 크리스의 생일이다. 일어나자마자 안의 귀에 ‘Happy Chris Day’라고 말해주는 크리스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부모님께 질리도록 ‘오늘 크리스 생일이야, 엄마 아빠.’라고 장난스럽게 문자를 보내는 크리스가 없었다. 시끄럽게 주방으로 내려가서 ‘내 생일 케이크 어디있어, 안!’이라고 정신없이 구는 크리스가 없었다. 안은 오늘은 크리스의 생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오늘은, 재잘거리는 크리스가 없는 조용한 크리스마스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