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싸둔 캐리어 옆엔 망가진 스웨터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굵고 부슬부슬한 실로 성글게 짠 연갈색의 목폴라 스웨터. 뜨개질을 시작한 이후 소품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옷을 짜는 것은 나의 로망이자 최종 목표였다. 처음 스웨터를 만들기 시작한 건 수향의 생일을 4개월 앞뒀던 지난여름. 옷을 직접 지어 입는 행위는 내게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의식주의 한 부분을 자급자족한다는 건 몸을 보호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기업이나 타인의 힘에 빌붙지 않아도 된다는 거니까. 그 독립성이 좋았다. 첫 옷을 꼭 수향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도, 단순히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를 훨훨 날게 할 비단옷을 주고 싶었다. 그저 남들 사는 대로 사는 나와 달리, 세계의 중력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모습이 내심 좋아 보여서, 앞으로 더 더 자유롭게 살라고.

그렇게 사랑과 동경과 약간의 질투를 담아 선물한 스웨터는 어젯밤 이리저리 늘어나고 헤지고 올이 풀려 아예 못 쓰게 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집에 들어서는 수향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야! 너 괜찮아? 옷이 이게 다 뭐야... 거기 별로 안 위험하다며.

어, 근데 너무 춥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을게, 잠시만.

나는 나를 지나쳐 곧장 방으로 향하는 수향을 따라 들어갔다.

너 괜찮은 거 맞아? 나 아까 뉴스 봤어. 오늘 폭력 사태 있었다며. 너도 휘말린 거야? 그건 아니지? 걱정 안 시키기로 약속했잖아.

수향은 굳은 얼굴로 스웨터를 벗어 개켰고 나는 그의 손에서 옷을 낚아채 펼쳐 보였다. 걸레짝이 된 스웨터에 속이 팍 상했다.

옷 꼬라지가 이게 뭐야? 이거 내가 4개월 동안 만든 건데. 아니, 어떻게 하면 옷이 이렇게 돼? 누가 정말로 잡아 뜯기라도 했어? 말 좀 해봐. 너 혹시 누구한테 맞았니?

수향은 대답을 하는 대신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아직 몸에 냉기가 다 가시지 않았는지 귀와 손끝이 빨갛고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수향은 컵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인퍼암스(InferArms)가 용역경비를 불렀어. 노래 부르고 떡 나눠 먹는 평화시위에 폭력진압이라니 말도 안 돼. 합법적으로 신고한 집횐데, 험악하게 인상 쓰고 와서 이리저리 툭툭 치고 힘으로 몰아내려고 하니까, 옆에 있던 학생이 밀려 넘어져서, 그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

나는 수향의 눈에서 분노와 원망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니까 수향이 퇴근 후 저녁과 주말에 홀로 시위에 나가기 시작한 건 3주 전이었다.

2025년 탄핵 이후 시작된 민주주의 리부트도 잠시, 재작년에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더니 별안간 개인의 총기 소지를 합법화했다. 반발이 심했지만 미국이 하는 일은 뭐든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총을 쇼핑하고 휴대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총기 자유화의 결과는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기들 딴의 ‘자유’만 맹목적으로 확장하고 윤리 교육을 소홀히 해 부작용이 심각했다. 총기 사고가 줄을 이었고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난사하거나 강도와 성폭력에 총기를 이용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모 초등학교에서 부모님 소유의 권총을 난사해 초등생과 선생님, 병설 유치원의 어린이가 다치고 죽었다.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소화기(小火器) 업체인 인퍼암스와 정계의 부정결탁 정황이 드러났고, 분노한 시민들은 국회와 인퍼암스 강남 사옥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원체 올곧고 정의로운 성정을 가진 수향은 곧장 시위에 동참했다. 나에게도 함께하지 않겠느냐 물었지만, 나는 연말이라 일이 몰려 피곤하다고 거절했다. 사람들이 다친 것은 분명 슬프고 잘못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한겨울에 수많은 사람이 모인 길거리에 몇 시간이고 머무르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이제 와서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사실 내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수향이 의사를 물었을 때 당혹스러운 마음이 컸다. 사람이 죽어 나가든 말든 자기들의 잇속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과 부패한 정치인들보다 내 정성을 무시한 애인에 더 화가 난다면 내가 잘못된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설마, 내가 남들보다 악한가?

내가 언제부턴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수향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수향은 그런 나를 마주한 채 차분히 밥과 반찬을 꺼내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그의 얼굴과 몸짓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나와 달리. 폭력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오히려 나 같았다. 인상을 구긴 채 시끄러운 속내를 뾰족하게 내세운 나와 스웨터가 아닌 세상을 구하고 단호하게 앉아 있는 너의 대비. 파들거리는 얇은 유릿장 같은 나와 두터운 솜이불 같은 너. 그 차이를 직시한 순간 들이친 감정은 서운함이었을까 열등감이었을까, 나는 결국 그에게 버럭 화를 냈고 새벽이 다 가도록 말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간밤에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고 몇 번이나 칭얼거렸으며 몇 번 울먹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수향의 실망한 표정이 뇌리에 남았다. 나는 시위가 다시 안전해질 때까지만 집에 있어달라 했지만, 수향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다면 당분간 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고, 수향은 묵묵히 짐을 챙겼다. 아마 그는 오늘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하루가 흘렀고, 나는 퇴근버스에 올랐다. 강남 한복판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어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족히 여덟 시는 될 터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위에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거리를 서성였다. 밀려오는 수치심에 몸이라도 혹사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집으로 향하던 길, 버스가 시위대 바로 옆에 멈춰 섰을 때, 창밖으로 수향이 보였다. 덩치 큰 남자들에게 한쪽으로는 멱살을 잡히고 다른 한쪽으로는 뒤로 밀쳐져 몸이 인파 속으로 꺾인 채 구호를 부르짖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의 양옆으로, 앞과 뒤로 그와 같은 표정을 한 수많은 시민들이 보였다.

무고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날것의 폭력을 피부로 맞닥뜨린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 누군가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잘 먹고 잘 산다는 걸, 그제야 현실로 인정했다. 권력 앞에서 상식은 희생의 부축을 받아야만 간신히 설 수 있었다. 작은 일에만 분노할 줄 아는 옹졸한 내 얼굴이 그들과 나 사이에 놓인 유리 벽에 맺혀 흘러내렸다. 처음 느껴보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날 한파 속을 걸으며 내 평범한 일상이 이름도 모를 누군가의 투쟁과 고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뼈에 새겼다.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도착한 집엔 나의 수향이 있었다. 더 이상 늘어난 스웨터는 중요치 않았다.

이번 글을 쓰며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다시 읽었습니다. 수많은 분께 빚을 지고 있기에 평범한 일상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분들께 감히 감사와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