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마음, 마음. 한낱 티셔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아아, 사람의 마음이란. 겨울 한파가 도래하던 어느 새벽 노랫말 같은 문장을 흥얼거리며, 그것은 깨어났다. 5평짜리 원룸의 허름한 붙박이장 안에서 옷걸이에 위태하게 걸려있던 그것, 그러니까 목 부분이 늘어나다 못해 힘없이 축 처진 그 티셔츠는 다른 평범한 물건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감히 마음을 탐했다. 사람도 아닌 주제에, 사람의 마음을.

 ‘깨어남’을 거친 뒤로 그것은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옷장 안에서 낡은 옷가지들과, 침대 위 요염한 자태의 극세사 이불과 뒤엉켜, 때로는 차가운 바닥 위에 널브러져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것은 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효용성이 있어 깨어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싶다. 그것은 권태로운 일상 속 막연한 욕망을 품었다.

 그것에 손길이 닿은 유일한 사람이자 원룸의 주인인 희정은 정리를 깔끔하게 잘하는 편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덕분에 희정의 막무가내인 손짓에 따라 그나마 집안 곳곳을 옮겨 다닐 수 있었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희정은 그것을 절대 밖에 입고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목이 다 늘어나 너무 허름하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바깥 세상에 나갈 일은 평생 없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희정의 제멋대로 변하는 마음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도. 

 그것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자신의 세계 속 유일한 사람인 희정을 열심히 관찰하는 일. 희정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난해했다. 빠른 템포에 비명 같은 괴성이 나오는 밴드 곡을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재즈 피아노 곡을 들으며 잠잠히 감상에 젖었다. 한 번도 침대 위를 벗어나지 않는 날도 있는 한편, 어떤 날엔 부지런히 청소를 하며 음악에 맞춰 엉덩이춤을 추기도 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는데 보통은 우는 편이었다. 가만히 잘 있다가도 어느 순간 눈을 느리게 끔벅이며 몸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다 보면, 어느새 희정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러고는 입을 쭉 내밀고 점선같이 끊기는 소리로 울음을 뱉어내곤 했다. 그것은 희정을 알아갈수록 자기가 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 아니면 그녀인지 헷갈렸다.

 오늘 희정은 평소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했다. 복도에서부터 들리는 발소리가 유난히 나약하다 싶었는데, 씻지도 않고 옷을 그것으로 갈아입은 채 곧바로 쭈그려 앉았다. 그러더니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희정의 거꾸로 된 얼굴이 그것에 가까워졌다. 찌푸린 희정의 얼굴이 꽃봉오리가 벌어지듯 탁 터지더니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금세 허벅지를 적셨다.

 무슨 일이지, 어디 아픈가. 오늘은 눈물이 더 뜨겁고 빠르다. 이렇게 가까이 희정의 얼굴과 마주한 건 처음인데. 그것은 무언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올가미에 목이 걸린 듯 답답하고 희정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희정을 더 넓게 감싸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욕망이었다.

 희정은 슬픔을 비워내는 특유의 방식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었는데, 발목을 웅크려 잡은 모양새가 꼭 동그란 공 같았다. 희정의 살결에 붙은 그것도 덩달아 흔들리며 그녀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고스란히 느꼈다. 희정이 얼굴을 파묻은 채로 속삭이자 마치 거꾸로 된 얼굴로 그것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있잖아. 인생은 너무 커. 세상이 말이야, 너무. 빌딩도, 하늘도, 사람들도 다 너무 커. 근데 나는 너무 작아. 나 혼자로는 너무 작아. 애달픈 가락을 읊듯이 희정은 얼마간 그렇게 속삭였다.

 그것은 모르는 크디 큰 세상이 희정을 괴롭히는 듯 했다. 희정의 집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바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가보다. 언젠가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본 적이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희정에겐 아름다움도 고통일 수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것은 희정의 좌우로 움직이는 몸짓에 따라, 그녀의 속삭임에 가락을 맞추었다. 마음, 마음, 마음. 아아, 사람의 마음이란. 한낱 티셔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그것은 작은 희정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 그것은 번뜩이는 섬광이 스쳐가듯 깨어남의 이유를 일순간에 깨달았다. 그리고 울고 있는 희정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희정, 나는 너를 사랑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