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띠리링.

 아침 8시 15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소란스럽게 미아의 하루를 깨웠다. 카페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지만, 미아에게는 15분이면 준비는 충분했다. 양치하고 세수하는 데에 5분, 옷 입는 데에 3분, 집 계단 내려가는 시간 1분, 출근길 3분. 무려 3분이라는 여유로운 출근길에 미아는 조금만 더 잘까, 생각했지만 20초 정도 뒤척이다 일어났다. 양치를 하면서 창문을 여니 찬바람이 방 안으로 훅 들어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가을바람이 코끝을 찔렀다. 창문 밖의 사람들이 얇은 겉옷을 걸친 채 걸어다녔다. 미아는 휴대폰을 켜 날씨 앱을 확인해보았다. 현재 온도 14℃. 미아만의 출근복인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거대한 반팔티와 긴 카고 바지만 입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미아는 출근 준비에 부수적인 시간을 사용하는 걸 싫어했다. 매일 똑같은 방식을 그대로, 그대로. 출근복도 매번 큰 반팔티에 카고 바지 조합에서 바뀌는 일이 없었다. 가끔 빨래 계산을 실패한 날에만 다른 반팔티를 입는 정도였다. 반팔티만 입고 갔다간 감기에 걸리겠단 생각에 미아는 옷을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일하느라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니 무거운 외투 보다 가벼운 목티를 하나 티셔츠 안에 입어야겠다고 목티를 찾아보니 목이 다 늘어난 회색 목티 하나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 미아가 그렇게 교복 안에 즐겨 입던 목티였다. 당시와 관련된 모든 건 태워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꼭꼭 숨어있는 기록이 있었을 줄이야, 미아는 목티가 주름질 때까지 꽉 쥐었다. 시간을 보니 출근에 늦기 직전이었다. 미아는 재빨리 목티를 안에 입고 티셔츠와 카고 바지, 검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나갔다. 다행히 정각에 출근을 완료했다.

 다 늘어난 목티였지만 생각보다 목도, 팔도 따뜻했다.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행주를 빨고, 쇼윈도를 채우면서 계속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이 기억과 연을 끊은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왜 괴롭히는지. 미아는 원두를 템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며 눈을 꾹 감았다. 아차, 싶어 눈을 떠보니 원두가 너무 압축되어 있었다. 미아는 템퍼에 있는 원두를 버리고 다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미아, 목티 입었네?”

 “너 때문이잖아. 방어하려고!”

 모우랑 사귀고 처음 맞는 첫눈이었다. 10월 말에 첫눈이 내리던 해였다. 모우와 같이 학원에 가려고 일찍 종례를 마친 미아는 반에서 모우를 기다리고 있다가 첫눈이 내리자 그대로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모우는 종례를 마치고 미아 반으로 갔지만, 미아가 없어 찾고 찾다가 운동장까지 내려가 미아를 찾아냈다. 미아는 어깨쯤까지 오는 단발을 흩날리며 흰 눈을 맞고 있었다. 얼마나 눈 속에 있었는지 미아의 코끝은 빨갰고 속눈썹에는 눈이 살짝 쌓여있었다. 곧, 자그마한 눈이 미아의 목으로 떨어져내렸다. 모우는 미아의 손목을 살짝 잡고 눈이 떨어진 자리에 입을 가져다대었다. 미아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운동장에 있던 모두가 순간 정지화면이 되어 모우와 미아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모우는 그대로 미아에게 밀려 엉덩방아를 찧었고 미아는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반으로 뛰쳐올라갔다. 그 뒤로 미아는 겨울 내내 목티를 입고 다녔다. 고등학교 3년이 끝날 때까지.

 그래보았자 모우는 미아 곁에 없었다. 모우는 미아와 1학년 때 사귀고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해에 헤어졌다. 모우의 집이 이민을 가게 됐다는 이유였다. 미아는 모우의 이민 소식은 전혀 몰랐다. 사귀는 2년 동안 단 한번도 이민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던 모우에게 배신감을 느낀 미아는 그대로 모우와 헤어졌다. 입시에 집중해야 한다느니, 장거리 자신이 없다느니, 이런 말들은 다 핑계였다. 미아는 안정적이지 못한 삶이 싫었고 자신을 믿지 못한 모우가 미웠다. 모우는 미아를 붙잡지 않았고 그렇게 모우와 미아의 연애는 끝이 났다. ‘나쁜 놈. 한 번 잡아나 보지. 이민 간다고 말이나 하지. 6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열받는 내가 너무 한심해. 아니? 나를 이렇게 만든 모우가 나쁜 놈이지.’ 미아는 화를 삭히며 주문을 받았다.

 “주문하시겠어요?”

 “브루잉 커피, 산미있는 원두로 따뜻하게 한 잔이요.”

 미아는 속으로 제발 주문을 취소하길 바랐다. 브루잉 커피가 제일 귀찮은 메뉴였기 때문이었다.

 “시간 조금 걸리시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천천히 주세요.”

 “네. 5000원입니다.”

 ‘아, 누구야. 안 바쁜가.’ 미아는 고개를 들어 손님을 보았다.

 “미아, 목티 입었네?”

겨울엔 목티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