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자꾸 뭔가를 잊은 듯한 기분이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한 손으로 가방을 뒤적거린다. 반질거리는 지갑과 방전될 위기의 휴대폰, 무거운 보조 배터리와 립스틱, 이어폰까지 더듬어 빠짐없이 챙긴 걸 확인한 후에도 손은 이내 다시 가방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강박적인 점검은 끝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떨어트린 것은 없는지 물건들을 꺼내 하나하나 책상 위에 늘어놓는다. 특히나 술을 마신 날에는 조심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또다시, 반질거리는 지갑과 이미 방전된 휴대폰, 무거운 보조 배터리와 립스틱, 엉킨 이어폰, 그리고 복슬복슬한… 복슬복슬한?

 그곳에 눈동자가 달린 연두색 털 뭉치가 있었다.

 -안녕.

 털로 뒤덮여 잘 보이지 않는 그것의 작은 입가는 말을 처음 배운 아이의 것처럼 어색하게 움직였지만 발음은 정확하고 음성은 또렷하였다.

 -이게 뭐지…너무 많이 마셨나…?

 -아니, 네가 보고 있는 것이 맞다. 나는 지구 밖 행성에서 왔다.

 털 뭉치는 자기 옆에 일렬로 늘어져 있는 물건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머리 위에 달린 더듬이로 내 손가락을 툭툭, 하며 건드렸다. 보드라운 털이 살갗에 닿아 간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꿈이 이렇게 생생할 리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방 벽에 붙어 섰다. 내가 아는 바로는 저렇게 생긴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딘가 서툴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있다. 털 뭉치 자신이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은 분명한 외계 생명체였다.

 -저기, 지구를 정복하러 온 거야…? 아니면 나 너네 행성으로 끌려가는 거야?

 이 지구가 내게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긴 했었다. 시끄럽고 빠른 세상은 내게 자주 버거웠으니까. 조용하고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행성이 있다면, 진지하게 이주를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급작스레 떠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지구에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일등 강아지 코코가 있다. 또 아직 못다 읽은 책이 있고, 묻어뒀던 꿈도 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가야 한다니.

 털 뭉치 외계인은 까만 눈동자로 겁에 질린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 눈빛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동정이 담겨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간절한 도움과 구원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게 행복이라는 것을 주어라. 그걸 찾아서 바통에게 가야 한다.

 너의 몸을 숙주로 쓰겠다는 협박도,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경고도 아닌 고작 행복을 달라니.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나는 얼떨떨했다.

 -행복? 그건 물건이 아닌데… 그렇게 쉽게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떤 것인가? 나는 반드시 그것을 가져가야 한다.

 -어…그러니까, 그건 말이지.

 외계인에게 행복을 설명하라니. 난감했다. 애초에 이들이 감정을 느낄 수는 있는 건가? 눈물을 흘리거나 웃을 수 있나? 행복을 이해하려면 어떤 경험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 행성과 우리 행성의 환경과 문화가 다를 거고, 그럼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게 뭐였지? 그러니까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데, 어쩐지 희미했고 다른 차원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 나도 너처럼 외계에서 왔을까. 왜 나도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거지? 지구인이라면 응당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감정을 설명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내 꼴이 우스웠다.

 외계인은 미동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때 얼마 전 구매해 방에 걸어 두었던 라임향 방향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라임향…

 -라임향?

 그래, 인간은 비유라는 걸 할 수 있다. 일단 질러놓고 어떻게든 끼워 맞추면 되겠지. 행복에서는 라임향이 난다. 뭐 그런 식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다음은? 이렇게 끝나면 좀 부족한데… 이번엔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히 마주쳤던 짧은 영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영어로 아무 운동 경기를 생각하고, 그 운동 경기의 두 번째 글자로 시작하는 과일을 떠올리고, 또 그 과일의 마지막 글자로 끝나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하다 보면 결국에 모두가 코끼리를 그리게 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러니… 에라 모르겠다.

 -…코끼리.

 -라임향 코끼리?

 -그래…. 그거야.

 -알겠다. 행복은 라임향 코끼리라는 거지? 그럼 내가 그걸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외계인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숨죽여 내 대답을 기다렸고, 나는 홀린 듯이 그를 쳐다봤다. 초능력을 앞세워 협박은 못할망정 되려 부탁을 해오는 무력한 외계인을 보며 나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영원한 잠’이라는 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죽음이 아닌가. 그의 작고 동그란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선 행성에서 실패하면 죽음뿐인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너는 어쩌다 별 도움도 안 되는 내게로 온 걸까. 하지만 내가 아니라면 이 외계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도와줄게.

 결국 나는 작은 털 뭉치 외계인과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라임향 코끼리 찾기>의 다음 내용은 2월 12일, 포스타입 비하인드(https://www.postype.com/@putsoseol)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