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해가는 인간성을 간신히 붙드는 음성이 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간 절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의 말씀은 단단하고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이락에게 너무도 혹독했다. 스님은 ‘극락과 지옥은 모든 상태가 같습니다. 단지, 그 안의 사람들이 다를 뿐이죠. 극락과 지옥은 똑같이 사람들에게 진수성찬을 내어줍니다. 아주 긴 수저를 쥐어주면서요. 지옥의 사람들은 긴 수저를 자신의 입에 넣기 바빠 모든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중간에 다 떨어뜨립니다. 하지만 극락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긴 수저를 이용해 상대방의 입에 상대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대신 넣어줍니다. 그게 극락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극락과 지옥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장소, 이 시간이 바로 극락도, 지옥도 될 수 있는 곳이죠. 이왕 살 거면, 극락에 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갓 두 자릿수의 나이가 된 이락은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따스한 손길에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의 감각이 달콤해서 ‘극락에서 사십시오.’하며 내미는 스님의 새끼손가락이 곧 녹아 없어질까봐 허겁지겁 새끼손가락을 스님의 손가락에 걸고 ‘극락에서 살게요.’하고 약속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이락은 힘없는 손으로 주먹을 쥐며 생각했다. ‘스님, 제게 왜 그런 약속을 하셨나요? 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옥에서 숨 쉴 듯합니다. 저는 스님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지 못할 사람이었어요.’ 이락은 항상 이런 태도였다. 이락의 ‘이런 태도’란 어머니의 단어를 빌리자면, ‘비관적인’, ‘우울한’, ‘무료한’, ‘분위기 망치는’ 등등의 태도를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보기에 이락의 ‘이런 태도’란 ‘배려심 있는’, ‘다정한’, ‘친절한’, ‘신비스러운’, ‘밝은’ 등등의 태도를 말했다. 이락은 누군가에게는 극락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락은 한평생 지옥에서 살아왔다. 이락이 극락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저 이락의 발버둥 때문이었다. ‘극락에서 살 수 없다면, 적어도 극락에 사는 것처럼 보이게끔 살 거야. 죽어도 내가 지옥에서 사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온몸의 흉터들이 이락의 세상은 지옥이라는 걸 증명해주듯 소리쳤다. 네가 사는 곳은 극락이 아니라고. 흉터들의 외침이 시끄러워 이락은 베개로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이락은 소리로부터 고립되기 위해 최대한 몸을 구겼다.

 배게에 눌려 한쪽으로 쏠린 머리카락과 다 주름진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이락은 편의점으로 나섰다. 저녁으로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 삼각김밥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인적 드문 동네에서 사는 이락은 사람보다 길고양이들을 자주 마주쳤다. 그중에서 검정색과 흰색이 섞인 마른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이락은 나름 그 고양이와 친해서 이삼이라고도 불렀다. 이삼인 이유는 그 고양이를 만난 날이 2월 3일이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계단을 내려가니 역시나 이삼이가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인사하려 이락이 다가가면 보통 이삼이 경계하다가 이락을 알아보고 머리를 가져다 댔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이락이 다가가 보니 이삼은 얇은 몸 밑에 자신을 똑 닮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품고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락은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 대신 고양이 사료 하나와 락토프리 우유를 하나를 사고 새끼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락은 새끼 고양이에게 이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오를 만난 날이 2월 5일이었기 때문에.

 이락은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했고 쉽게 잠들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아침마다 밥을 달라고 울어대고 밤마다 졸려 하는 이오가 있어 이오에게 맞추다 보니 이락은 어느샌가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오의 밥을 챙겨주면서 이락도 간식거리 하나둘 챙겨 먹다 보니 밥을 챙겨 먹고 있었고 멍하니 무엇을 할지 모른 채로 무력하게 있다가도 이오가 나타나 품에 파고들어 이락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오는 이락이 보이지 않으면 울어댔다. 이락이 며칠 자리를 비울 일이 있어 이오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돌아오면, 다시는 이오를 맡지 않겠다고 손사래 칠 정도로 이오는 이락만을 따랐다. 이락은 사실 이오를 잠시만 데리고 있다가 보호 시설에 넘기려 했으나, 이락은 이오가 없으면 안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락의 삶의 변수는 이오 단 하나였지만, 이오 하나로 인해 이락은 지옥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극락에서 살고 있냐,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락의 삶이 지옥은 아니었다. 영원히 지옥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던 이락의 판단은 틀렸다. 이락은 영원이라는 건, 어쩌면 시간에 무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락은 언젠가는 스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오의 등을 쓸어내렸다.

무한에서 의미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기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