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 위로 진눈깨비가 쏟아진 날이었어. 우리는 집 앞 골목에 서 있었지.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나와서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어. 그날 은수는 친구 두 명을 불러서 우리를 질질 끌고 나왔어. 7년을 버틴 자리에서 움직이려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 장판에 찍힌 내 발자국, 나랑 맞닿아있던 벽지, 고이 품어온 먼지들까지. 나가서 기다리다 보니 다른 가구들도 줄줄이 나오더라고. 우리집이 텅 비었겠다 싶었어.

그렇게 하루가 지났어. 나이 많은 의자는 이미 감기에 걸렸고, 서랍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투덜거리더라. 처음엔 잠깐 있다가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었어.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이유가 있겠지, 대청소를 하려나, 무슨 공사라도 하나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아침, 은수가 처음 보는 차를 타고 떠나는 거야. 익숙한 짐들을 모두 싣고서.

그때부터 덜컥 겁이 났어. 우리가 뭘 잘못했나? 내가 좀 더 예뻤더라면, 내가 좀 더 푹신했더라면, 별난 기능이 있거나 좀 천천히 낡기라도 했으면 뭔가 달랐을까? 춥고 불안해서 몸이 덜덜 떨리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은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더라. 우리는 처음 난 곳에서 순리에 따라 절차에 따라 잘리고 씻겨지고 갈리고 조립돼서 이리 저리로 옮겨졌다가, 그 애를 만나서 이 동네로 왔거든. 은수의 가족 같은 것이 되고 싶었는데…

잠깐 눈을 붙일까 하다가도 서랍의 투정에 잠이 깨고 의자의 기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나는 애들을 최대한 끌어안아서 체온을 나누려 했어. 근데 희망을 품고 싶어도 첫날 만난 화장대의 얘기가 자꾸 떠올라서 그럴 수가 없더라.

우리가 골목에 도착했을 때 화장대는 이미 그곳에 있었어. 뿌옇고 더러운 게, 벌써 총명함을 다 잃은 것 같더라. 인사도 안 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어. 근데 걔가 다음날 동틀 때쯤 느닷없이 뭐랬는 줄 알아? 대뜸 자기 뺨을 보라는 거야. 그리고 이러더라?

“대형폐기물. 이게 붙으면 결국 소각장으로 간대. 불타 사라진대. 믿어져? 너네 주인도 내일이나 모레 돌아올 거야. 스티커 들고. 그게 규칙이거든”

자세히 보니까 뺨에 정말 뭐가 붙어있긴 하더라고. 걔 말을 다 믿진 않았지만,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어.

그리고 그날 오전 그 애는 정말 어딘가로 실려 갔어. 저항 하나 없이. 혼란스럽더라. 정말 저게 내 운명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내 자리가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그날 오후, 서랍은 새 주인을 찾았어. 불평불만을 늘어놓다가 제풀에 지쳐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맘에 들었나 봐. 이리저리 둘러보고 열어보고 만져 보고 사라지더니, 사람을 하나 더 데려와 업어 갔어. 서랍이 예쁘긴 했어. 성격은 좀 별로지만, 어리고, 사용감 없이 하얗고, 일 잘하고, 하자 없고. 좋은 새 주인이어야 할 텐데 걱정이야.

근데 그날 의자는 지나가던 남학생들한테 차여서 다리가 부러졌어. 원래도 연결부가 헐거워져서 덜렁거렸는데, 걔네가 발로 차고 밟으니까 금세 부서지더라. 의자는 너덜거리는 몸을 추스르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말이 없었어. 죽었는지 살았는진 몰라. 가구는 숨을 쉬지 않으니까. 그냥 그 골목이 너무 고요해진 게 좀 오싹했어.

그리고 진눈깨비가 계속 내려서 슬슬 걱정됐어. 천이 너무 푹 젖어버리면 세탁하기가 어렵거든. 생활 방수는 이미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고. 완전히 안쪽까지 젖으면 나중에 곰팡이도 쉽게 필 텐데...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은수는 썩은 내 속을 볼 순 없을 테니까… 더욱 곤란한 일인 거지.

그날 저녁, 은수가 돌아왔어. 우리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오길래 내심 기대도 했어. 근데 나한텐 눈길도 안 주더라. 쓰러진 의자만 쓱 훑어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사라졌어.

은수는 박스테이프를 들고 돌아왔어. 의자 다리를 몸통에 붙여서 칭칭 감더니 흩어진 조각들도 한데 모아서 덩어리로 만들었어. 다리가 뺨에 이마가 엉덩이에 척추가 골반에 가서 붙었어. 은수가 끝내 의자에 스티커 하나를 붙이더라. 나는 그때 깨달았지. 아, 저게 그 대형폐기물 스티커겠구나, 하고.

그제야 알았어. 우린 가족인 적 없었구나. 친구는 무슨, 동거물도 아니구나. 나는 단지 소모품이었고, 이제 폐기물이구나. 근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 은수야, 너는 내 주인이잖아. 나를 고르고 나한테 자리를 내어줬잖아. 나를 사용하고 돌봐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잖아. 나는 널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결국 나한테도 스티커가 붙었어. 은수는 떠나고 다시 아침이 돌아오고 있었어. 내 친구는 박스테이프에 묶여 있고 나는 의식이 희미했어. 너무 추워서 그런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았어. 입을 뻐끔거려 봤지만 말도 안 나왔어.

나는 내가 뭘 위해 살아왔는지 생각했어. 내 마음 하나 표명 못 하는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었고, 그렇게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주인인 적 없었고, 공장에서 태어나 주인에게 닿기까지, 모든 여정에 내 의지는 하나도 없었어.

근데 은수한테 사랑조차 못 받았지. 은수는 내가 나라서가 아니라, 내가 크기와 색이 적당해서, 소재가 탄탄하고, 가격이 저렴해서 날 골랐어. 비용을 지불하고, 필요한 만큼 사용했을 뿐이야.

그런데 나는 왜, 그 집에 내 마음을 다 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