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년

 휴대폰 어딘가에 박아놨던 커플 앱이 마음대로 하루에 의미를 더해버렸다. 분명 그에 대한 모든 걸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신은 한숨을 쉬고 커플 앱 알람을 손가락으로 슥- 그어서 지워버렸다. 손쉽게 지워지는 알람처럼 아신은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비중을 손가락 하나로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외부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많은 감정도, 힘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원래 소망이라는 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므로 여전히 아신은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지는 6개월 조금 넘었다. 왜 헤어졌느냐, 하는 주변의 물음에 아신은 답하지 않았다. 아신은 아마 그도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원체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와 헤어진 날에 아신은 울지 않았고 그는 울었다.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아신이었다. 아신의 말에 그는 잘 벗지도 않는 안경을 탁자에 내려놓고 구석에서 울음을 숨기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에게 냅킨 두 장을 가져다주고 아신은 떠났다. 그의 울음이 냅킨 두 장으로 해결될 울음이길 바랐다. 그가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눈물을 소비하지 않길 바랐다. 그에게 아신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그와의 헤어짐이 충격적이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예상했던 결과였다.

 아신의 기억 속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아신을 만나러 왔고 매번 다정한 말을 해주었다. 선물이라며 새로운 달이 될 때마다 꽃을 손에 쥐어줬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신은 그런 그가 좋았다. 그는 아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가장 변치 않으며 일관적인 사람이었다. 아신은 그의 다정함을 좋아했고, 그의 일관성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평소와 다를 때마다, 아신은 사랑의 크기만큼 불안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가 평소보다 다정한 말을 적게 해준 날에는 아신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었을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평소에 해줬던 다정한 말과 비교하면서 줄어든 말의 수만큼 그의 사랑이 식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날에 아신은 잠에 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8시간 내내 멍하니 바라보았다. 월초에 꽃을 주던 그가 늦게 꽃을 주는 달에는 꽃을 받기 전까지 손톱을 하도 뜯어서 피가 나기도 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해서 그가 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아신의 쪼그라든 마음은 그의 다정한 말과 손길 하나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랑으로 가득 팽팽해졌다.

 아신은 주위를 맴도는 불안을 그에 대한 의심이라 여겼다. 그와 아신의 관계에서 그는 완벽한 연인이었지만, 아신은 완벽함을 깎아내리는 흠이었다. 완벽한 그에게 감히 의심의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었다. 아신은 그와의 완벽한 관계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지 않고 싶었다.

 불안이 아신의 마음을 다 뺏어버렸을 때,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한 번, 작은 웃음소리는 아신의 빈 마음을 채워버리기 충분했다. 과분할 정도로 채워진 마음이 처음에는 얼떨떨했으나, 아신은 싫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얻은 건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채워진 마음은 잠깐의 공백에 녹아버렸고 그의 온기로 따뜻해졌던 마음은 혼자 있을 때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아신은 그로 인해 채워졌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닳았다.

 빠르게 채워진 마음은 빠르게 닳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아신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사랑에 불안이 덧대어진 이후부터 마음은 느리게 찼지만, 닳는 건 더 빠르게 닳았다. 마음을 훑어볼 시간도 없이 불안은 아신을 좀먹었고 아신은 점점 더 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헤어질 때쯤, 웃기게도 아신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는 여전히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아신은 그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고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기억에서 없애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