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여름에 괴담을 찾는 이유를 아는가?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뇌는 공포를 생명에 대한 위협 신호로 알아들어서 교감신경을 작동시킨다. 교감신경이 작동하면 피부의 입모근이 수축해서 피부가 소름 돋는 것처럼 변하고 몸에 소름이 돋으면 혈관이 이완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 혈관으로 혈액 공급이 줄어들어 피부 온도가 내려가 추위를 느끼게 된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니, 사람이란 무의식 저편에서부터 가성비와 효율을 판단하는 생물인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에 귀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괴담같이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저 불쾌한 기분만 들게 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럴 시간에 논문 한 편을 더 보는 게 이득이지 않나? 저 석사, 박사과정생들은 책상에 앉아서 떠들거라면 뭐하러 출근을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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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랩실 사람들은 교수님을 괴담이라고 부른다. 2년 전, 내가 학부생일 때는 분명 곽 교수님을 천사라고 불렀는데 말이다. 학부생 때 뵌 곽 교수님은 천사 그 자체였다. 교수님의 화법은 어조부터 달랐다. 항상 부드러운 어조에 날 선 단어 하나 없이 매끄럽게 말씀하셨고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거의 없으셨다. 교수님의 행동은 정말 점잖으셨는데, 물건을 놓을 때에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거나 교수님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깨끗하다거나, 모든 것이 어른스러운 분이셨다. 나는 내 전공을 대학원에 갈 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곽 교수님 밑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원에 들어왔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박사과정생분께 들은 말은, “항상 뒤를 조심하세요.”였다. 이게 무슨, 나는 내가 대학원이 아니라 사냥터에 온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원은 사냥터와 다름없는 곳이었고 그분의 말은 아주 타당했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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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이루는 것들이 완벽하길 바란다. <곽무연>의 이름을 달았다면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이루는 것’의 범위는 매우 모호하고 애매하다는 특징이 있다. 어릴 적에는 나만 잘하면 “무연이는 참 잘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만 잘해서는 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세상은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그것들은 나의 이미지를 흔들었다. 조별 프로젝트에서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면 결과물이 완벽할 수 없었고 어울리는 친구가 불량하면 나 역시도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천사 곽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걸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제하고 취하고 변형하는 시간을 지나왔다. 지루할 것만 같았던 시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체스판 밖에서 체스 말을 다루는 게이머가 되었고 게임에서 지는 일은 없었다. 체스말이 나를 보는 표정에서 나는, 그들을 구원했다는 뿌듯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교수가 된 이후로 자연스레 랩실이 생겼고 여러 대학원생이 입학했다. 그들은 <곽무연>의 이름 하에 있다. 그 말인즉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체스말을 내 체스판에 올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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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실은 3층, 곽 교수님 업무실은 5층. 교수님께서는 2층의 간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시는 것 같다. 교수님은 예고 없이, 자주 랩실에 찾아오신다. 이건 마치 쪼랩 필드에 보스몹이 출몰하는 일이 아닌가. 랩실에 들리겠다고 먼저 말씀해주시는 건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오셨다면 뒤에 말없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지 마시고 왔다고 말이라도 해주셨으면 좋겠다. 교수님의 시선은 학교 간 아이가 잘 하고 있는지 보는 느낌이 아니라,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가 존재감을 죽이고 목표 대상을 노려보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무거운 권위감을 준다.

 랩실에 대대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한 석사과정생이 곽 교수님의 논문을 참고하여 연구 아이디어를 냈지만, 교수님께 거의 반려에 가까운 지적을 받았다. 다음 날 랩실에 출근해서 다른 분들과 교수님의 지적이 타당하지 않다를 시작으로 교수님 욕을 시작했고 랩실 사람들 모두 교수님께 위화감을 느끼고 있어서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뒷담화에 거들었다. 교수님은 그때도 팔짱을 끼고 웃는 표정으로 그 학생들을 지켜보고 계셨다고. 듣기로는 그 학생들은 졸업하는 데에 최소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말…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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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경씨.”

 “아, 네. 교수님.”

 “덥지 않아요? 이상하게 우리 학생들은 에어컨을 안 켜더라.”

 “아…이상하게 여기는 항상 추울 정도로 시원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