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침대를 떠나지 않는다. 주인을 잃은 침대에 주인 행세를 하고 지낸 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갔다. 십 년 동안 누구도 이 침대를 팔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팔기는커녕 이불과 베갯잇이 2주마다 세탁되어 침대로 돌아왔다. 이 침대의 주인은 참 사랑받았나 보군, 하며 이것은 따뜻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이것은 언제부터 이 침대에 있었는지, 침대 밖은 왜 무서운지 몰랐다. 그냥 그랬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당연하듯이,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게 당연하듯이, 이것도 그냥 그랬다. 이 집의 늙은 여자가 2주마다 이불 빨래를 하는 것도 그냥 그런 것이었다. 늙은 여자는 종종 이 침대에서 잠을 잤다. 일주일 내내 여기서 자기도, 한 달 넘도록 여기에 오지 않기도 했다. 언제 오든 간에 늙은 여자는 매번 똑같은 자세로 잠을 잤다. 늙은 여자는 이것이 있는 줄도 모르지만, 꼭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것처럼 침대 오른편에 비스듬히 누워 잤다. 그러면 이것은 늙은 여자의 왼쪽에 비스듬히 누워 늙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늙은 여자는 10년 전보다 줄어들었다. 무언갈 압축한 것처럼 자꾸만 작아졌다. 이것은 늙은 여자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지만, 이것은 심장조차 가지지 못한 무언가지만, 가슴 주변이 자꾸만 시큰거렸다.

 늙은 여자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자다가 갑자기 울어버리거나 팔을 허우적거리기도 했고 소리치면서 새벽에 깨어나기도 했다. 이것은 늙은 여자의 잠버릇을 볼 때면, 시큰거림이 멈추고 화가 나면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늙은 여자가 슬픔에 발버둥 치는 모습은 이것에게 하나의 쇼처럼 느껴졌다. 늙은 여자를 향한 감정이 이것의 내부에 뿌리를 내려 어느새 훌쩍 나무로 자라났다. 손 쓸 새도 없이 늙은 여자의 행동과 표정, 말투를 먹고 자라났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읽고 크는 것처럼, 이것은 늙은 여자를 보면서 컸다. 하지만 신원 미정인 뿌리가 문제였는지, 늙은 여자를 향한 이것의 감정은 확실히 비틀려있었다. 늙은 여자가 침대를 소중히 여기는 걸 봐온 이것은 자신도 늙은 여자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처럼 늙은 여자가 힘들어 보이면 이것은 걱정보다 즐거움이, 안타까움보다 기쁨이 앞섰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랬다.

 늙은 여자는 개를 키웠다. 개의 이름은 ‘랑’이었다. 늙은 여자는 랑의 머리를 쓰다듬는 습관이 있었고 이것은 늙은 여자의 습관을 좋아했다. 늙은 여자의 느린 손길과 랑의 편안한 표정을 아꼈다. 이것이 늙은 여자와 랑을 먼 침대에서 바라볼 때면 기분 탓인지 랑과 눈이 마주치는 듯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랑은 이리로 오라는 듯이 혀를 내밀었고 아주 가끔, 이것은 침대 밖으로 발을 빼곤 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주변이 빛 한 점 없이 어두워졌고 물건이 사방에서 날라와 이것을 찢어버리라는 불안감이 이것을 짓눌러서 발을 빼는 정도가 한계였다. 침대 밖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랑은 이것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것과 눈을 맞추며 헥헥거리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늙은 여자는 랑도 많이 나이 들었다며 오래오래 살아 달라는 혼잣말을 삼켜 들어가듯 말했다. 이것도 랑이 오래 살기를, 늙은 여자가 죽지 않기를 빌었다.

 이것의 바람과도 무색하게 늙은 여자는 병을 달고 살았다. 잔기침은 일상이었고 밥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토하는 날도 있었다. 한동안 집에 없다가 팔에 자그마한 구멍을 중심으로 피멍을 단 채 오기도 했다. 늙은 여자의 건강은 이것의 존재감만큼 얄팍했다. 이것은 늙은 여자가 사라진 후의 세상을 그리지 못했다. 이유도 모른 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것이 침대를 관리해줄 사람마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다시 이불을 뒤집어 머리끝까지 올린 후에 한숨을 쉬었다. 침대 밖에서 늙은 여자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보통 두 번째에 끝이 나는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가 될 때까지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이것과 동시에 이상함을 감지한 랑도 캉캉 소리를 내며 짖었다. 랑의 발톱과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것은 이불을 걷어 늙은 여자가 있는 곳을 찾았다. 침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야는 넓지 않았다. 기침 소리와 짖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귀에 파고드는데, 늙은 여자는 보이지가 않았다. 이것은 자신도 모르게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야 너머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찢길 것 같은 불안감이 이것을 억눌렀고 시야는 새카매서 형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눈을 감고 달려갔다. 눈을 뜨자, 늙은 여자는 부엌 싱크대를 부여잡고 기침하고 있었고 랑은 늙은 여자의 발꿈치에 붙어서 계속 짖고 있었다. 늙은 여자의 손과 싱크대 주변에 검붉은 피가 튀어 있었다. 상처가 나서 나는 피와는 색부터 달랐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역류하여 토해내는 색이었다.

 랑은 이것의 존재감을 느꼈는지 짖는 걸 멈추고 이것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해 달라는 표정으로 이것을 바라보았지만, 이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의 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했고 이것의 손길은 무엇도 만질 수 없었다. 이것은 눈물이 나질 않아서 표정만 구겨질 뿐이었다. 이것이 여기, 늙은 여자의 옆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무의미했다.

 늙은 여자는 몸에 힘이 다 했는지, 싱크대를 잡던 손이 떨리다가 부엌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랑은 늙은 여자의 품으로 들어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늙은 여자가 힘들 때마다 웃음이 나던 이것이 이번에는 웃음이 나질 않았다.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 여자가 누군가를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웃겼던 거지, 늙은 여자가 아파서 죽어가는 모습이 웃기진 않았다. 오래오래 살아서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울며 살아가길 바랐고 이것은 늙은 여자의 쇼가 막을 내릴 때까지 보고 싶었다. 십 년은 너무 짧았다. 늙은 여자는 더 오래 살아야 했다. 늙은 여자는 피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품속의 랑을 쓰다듬었다. 랑은 이것과 눈을 맞추고 늙은 여자에게 머리를 갖다 대었다. 늙은 여자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늙은 여자는 천천히 랑의 머리를 쓰다듬다 눈을 감았다. 늙은 여자는 계속 차가워졌다. 랑도 수없이 짖다가 기력이 다했는지 잠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늙은 여자의 왼쪽에 누워 피 묻은 손에 닿지도 못할 자신의 손을 대었다. 이것은 늙은 여자의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